분류 오주연문장전산고 경사편 4 - 경사잡류 2
전적잡설(典籍雜說)
우리나라 서적의 수난(受難)에 대한 변증설(고전간행회본 권 5)
책의 수난이 어찌 중국에만 국한되었겠는가? 책이란 고금(古今)의 큰 보배이므로 때로는 조물주의 시기를 받기 때문에 항상 재난이 있는가 보다. 우리나라에도 책의 수난이 있었는데, 대강만 헤아려도 열 가지는 된다.
당(唐) 나라 이적(李勣)이 고구려(高句麗)를 침략하고는 국내의 전적(典籍)을 평양(平壤)에 모아 놓은 다음 고구려의 문물이 중국에 뒤지지 않는 것을 시기하여 모두 불태운 것이 그 하나이다.
신라(新羅) 말기에 견훤(甄萱)이 완산주(完山州)에 활거하여 삼국 시대의 전해 내려오던 책을 모조리 옮겨다 두었는데, 그가 패망하자 모조리 불태운 것이 그 둘째이다.
고려 시대에 여러 번 전쟁을 겪으면서 그때마다 없어진 것이 그 셋째이다.
조선 명종(明宗) 계축년에 일어난 경복궁(景福宮)의 화재로 사정전(思政殿) 이남이 모조리 탔는데, 그때 역대의 고전(古典)도 함께 탄 것이 그 넷째이다.
선조(宣祖) 임진년에 왜적이 침입할 때 난민(亂民)과 왜적이 방화하여 불태운 것이 그 다섯째이다.
인조(仁祖) 병자년에 청 나라 군사가 침입할 때 난민들이 방화하여 대부분 불탄 것이 그 여섯째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중국의 장수와 왜적이 경향 각지의 민가에 있던 전적을 모조리 찾아내어 싣고 간 것이 그 일곱째이다.
인조 갑자년에 역적 이괄(李适)이 관서(關西) 지방의 장수로서 군사를 일으켜 궁궐을 침범하여 그나마 약간 남아 있던 것마저 불태워 없어진 것이 그 여덟째이다.
우리나라 풍속이 책을 귀중하게 여길 줄을 몰라 책을 뜯어 다시 종이를 만들거나 벽을 발라 차츰 없어진 것이 그 아홉째이다.
장서가(藏書家)들이 돈을 주고 사들여 깊숙이 감추어 놓고 자기도 읽지 않으며, 남에게 빌려주지도 않아 한번 넣어두면 내놓지 않은 채 오랜 세월이 흘러 좀이 슬고 쥐가 갉아먹으며, 종들이 몰래 팔아 먹거나 하여 완질(完帙)이 없는 것이 그 열째이다.
내가 일찍이 탄식을 금치 못하면서 책의 수난 가운데서도 장서가 가장 피해가 크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책을 뜯어 다시 종이를 만들거나 도배를 하는 것도 마땅히 평시의 가장 큰 수난이겠지만 장서가 수난 가운데 가장 심하다는 것은 그 뜻이 간절하다. 책을 뜯어 다시 종이를 만드는 것은 우리나라의 저지(楮紙)가 아니면 만들지 못하며 도배 역시 안 된다. 그러나 장서는, 중국에서 어렵게 구해온 당장(唐裝)으로 종이의 품질이 나빠 훼손되거나 좀이 슬고 쥐가 쏠기 쉬우며 한번 파손되면 다시 갖추기가 어렵기 때문에 한 말이다.
책 수장하기를 중국 범씨(范氏)의 천일각(天一閣)처럼 해서 역대의 병화(兵火)에도 탈이 없이 깨끗하게 보존하여 서종(書種)이 국내에 전하게 된다면 어찌 경전(經典)을 수장하는 것을 서적의 재난 중 가장 심한 것이라 하겠는가?
사람들은 더러 내 말을 망령된 말이라고 하나 격언(格言)이 아니겠는가?
http://www.itkc.or.kr/index.jsp?bizName=MK&url=/MK/MK_NODEVIEW.jsp%3Fdbname=MK%26set_id=1081740%26start=5%26count=14%26disp_cnt=10%26tot_cnt=14%26qry=%26keyword=%26sortsection=BOOKNAME%26order=ASC%26type=CONT%26seojiid=%26gunchaid=%26muncheid=%26stype=%26sectionname=CONT%26nPage=1%26thecount=4
전적잡설(典籍雜說)
우리나라 서적의 수난(受難)에 대한 변증설(고전간행회본 권 5)
책의 수난이 어찌 중국에만 국한되었겠는가? 책이란 고금(古今)의 큰 보배이므로 때로는 조물주의 시기를 받기 때문에 항상 재난이 있는가 보다. 우리나라에도 책의 수난이 있었는데, 대강만 헤아려도 열 가지는 된다.
당(唐) 나라 이적(李勣)이 고구려(高句麗)를 침략하고는 국내의 전적(典籍)을 평양(平壤)에 모아 놓은 다음 고구려의 문물이 중국에 뒤지지 않는 것을 시기하여 모두 불태운 것이 그 하나이다.
신라(新羅) 말기에 견훤(甄萱)이 완산주(完山州)에 활거하여 삼국 시대의 전해 내려오던 책을 모조리 옮겨다 두었는데, 그가 패망하자 모조리 불태운 것이 그 둘째이다.
고려 시대에 여러 번 전쟁을 겪으면서 그때마다 없어진 것이 그 셋째이다.
조선 명종(明宗) 계축년에 일어난 경복궁(景福宮)의 화재로 사정전(思政殿) 이남이 모조리 탔는데, 그때 역대의 고전(古典)도 함께 탄 것이 그 넷째이다.
선조(宣祖) 임진년에 왜적이 침입할 때 난민(亂民)과 왜적이 방화하여 불태운 것이 그 다섯째이다.
인조(仁祖) 병자년에 청 나라 군사가 침입할 때 난민들이 방화하여 대부분 불탄 것이 그 여섯째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중국의 장수와 왜적이 경향 각지의 민가에 있던 전적을 모조리 찾아내어 싣고 간 것이 그 일곱째이다.
인조 갑자년에 역적 이괄(李适)이 관서(關西) 지방의 장수로서 군사를 일으켜 궁궐을 침범하여 그나마 약간 남아 있던 것마저 불태워 없어진 것이 그 여덟째이다.
우리나라 풍속이 책을 귀중하게 여길 줄을 몰라 책을 뜯어 다시 종이를 만들거나 벽을 발라 차츰 없어진 것이 그 아홉째이다.
장서가(藏書家)들이 돈을 주고 사들여 깊숙이 감추어 놓고 자기도 읽지 않으며, 남에게 빌려주지도 않아 한번 넣어두면 내놓지 않은 채 오랜 세월이 흘러 좀이 슬고 쥐가 갉아먹으며, 종들이 몰래 팔아 먹거나 하여 완질(完帙)이 없는 것이 그 열째이다.
내가 일찍이 탄식을 금치 못하면서 책의 수난 가운데서도 장서가 가장 피해가 크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책을 뜯어 다시 종이를 만들거나 도배를 하는 것도 마땅히 평시의 가장 큰 수난이겠지만 장서가 수난 가운데 가장 심하다는 것은 그 뜻이 간절하다. 책을 뜯어 다시 종이를 만드는 것은 우리나라의 저지(楮紙)가 아니면 만들지 못하며 도배 역시 안 된다. 그러나 장서는, 중국에서 어렵게 구해온 당장(唐裝)으로 종이의 품질이 나빠 훼손되거나 좀이 슬고 쥐가 쏠기 쉬우며 한번 파손되면 다시 갖추기가 어렵기 때문에 한 말이다.
책 수장하기를 중국 범씨(范氏)의 천일각(天一閣)처럼 해서 역대의 병화(兵火)에도 탈이 없이 깨끗하게 보존하여 서종(書種)이 국내에 전하게 된다면 어찌 경전(經典)을 수장하는 것을 서적의 재난 중 가장 심한 것이라 하겠는가?
사람들은 더러 내 말을 망령된 말이라고 하나 격언(格言)이 아니겠는가?
http://www.itkc.or.kr/index.jsp?bizName=MK&url=/MK/MK_NODEVIEW.jsp%3Fdbname=MK%26set_id=1081740%26start=5%26count=14%26disp_cnt=10%26tot_cnt=14%26qry=%26keyword=%26sortsection=BOOKNAME%26order=ASC%26type=CONT%26seojiid=%26gunchaid=%26muncheid=%26stype=%26sectionname=CONT%26nPage=1%26thecount=4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