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 : 나는 학생이다
원서명 : 王蒙自述, 我的人生哲學
저자 : 왕멍(王蒙)
역자 : 임국웅
서지 : 들녘, 2004년
[저자 약력]
1934년 베이징 출생. 1948년(14세)에 중국 공산당의 지하 당원이 되었고, 1958년에는 우파로 낙인찍혀 16년간 신장에 유배되어 살았다. 1979년에 복권되어 베이징으로 귀환. 1950년대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해 48년 동안 1천여만자의 작품을 썼고, 그의 작품은 미국 및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21개의 언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목차]
31쪽
대부분의 상황, 즉 일반적인 상황에서 좋은 이념은 생존과 일치되는 것이지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
사교(邪敎)의 예를 들어보자. 사교는 어떻게 잘 살 것인가에 역점을 두지 않는다. 교주와 교의를 위해 죽는 것에 역점을 두어 자살을 획책하거나 자학하게 만든다. 심지어 자기가 죽는 것으로도 모자라 더 많은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으로 사교의 예언을 증명하려고도 한다. 이처럼 생명을 적대시하고 인류의 생존권을 멸시하는 신앙은 아무리 좋게 설명하려 해도 마땅치 않다.
어떤 사람이 재앙을 피해 혼자 살아남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와 유사한 재앙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반성하며 진지하게 사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아 겨우 생존한 그 사람을 도리어 문책한다. 당신만 왜 살아남았는지 문책하는 것이다. 이는 그에게 살아 있음을 치욕으로 느끼게 만든다. 그가 다시는 고개를 들고 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당신만 왜 살아남았는가? 이런 질문이야말로 살아남은 사람 자신만이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생존권은 가장 우선시되는 인권이다. 사람들이 어렵게 살아남은 그 한 사람을 질책한다는 것은 정말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33쪽 나에게 배움은 타인에 의해 결코 박탈당하지 않는 유일한 권리였다.
<나는 왜 자살하거나 미치지 않고 견뎌왔는가>(34-36쪽)
사실은 역경에 처해 있을 때가 가장 배우기 좋은 상황이다.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여서 그 효과도 가장 크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시기에는 쉽게 방만하게 되며, 주위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친구, 추종자, 수행자, 이름을 듣고 찾아온 사람, 찾아와서 배움을 청하는 사람 등등-이 몰려든다. 이 시기에 당신은 강연을 하고, 글을 쓰며, 의견을 발표하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입장에 서게 된다. 또한 이 시기의 당신은 신념으로 가득 차 타인의 결점만 볼 것이다. 당신은 사회와 대중이 당신에게 거는 기대를 뿌듯하게 생각하고, 이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각종 행사와 회식에 참석하는 횟수와 시간이 늘어난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당신이 확실히 그 자리에 있었음을 표시하는 것에 불과하다.
역경에 처해 있을 때,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한쪽 구석에 던져져 있을 때, 그리고 ‘접촉불가’, ‘혁명불가’라는 딱지가 붙어 있을 때가 바로 아무런 방해 없이 배움에 전력투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이며, 사색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또한 경험을 집약하고 엄격하게 자신을 반성하며 되돌아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이다. 그리고 이 시기를 통해 당신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굳건하게 키워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따라서 지식을 얻고, 재주를 익히며, 자신에 대해 각성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라 하겠다.
문화대혁명(1966-76) 시기에 나는 신장의 위구르족과 함께 농촌에 거주하고 있었다. 극좌파가 득세하던 시기라 나는 우파로 분류되어 창작조차 할 수 없었고, 직업을 구할 수 없었으며, 정상적인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도 없었다. 때문에 나는 공개적으로 학습하는 것도 허락받지 못했다. 이때 나는 농촌 간부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모 주석의 저작을 학습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모 주석의 저작들을 어떻게 학습했는가? 나는 이 저작들을 위구르어로 암기했다. 이것이 내가 뒤늦게 위구르어를 배우게 되었던 이유이다. 나는 그때 모 주석의 3대 저작(<<인민을 위해 복무하자>>, <<바이췬을 기념하여>>, <<우공이산>>-옮긴이)뿐만 아니라 다른 어록들도 줄줄 암송했다. 한 번은 위구르어로 <<바이췬을 기념하여>>라는 문장을 큰 소리로 낭독한 적이 있는데, 주인집 아주머니는 방송국에서 방송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내 위구르어 발음이 얼마나 정확한지 설명해주는 일화이다.
외국의 벗들은 어떻게 16년이란 세월을 신장의 농촌 지역에서 보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들은 나에게 어떻게 자살하거나 미치지 않고 견딜 수 있었는지 물었다. 16년이란 기나긴 세월의 공허와 고통을 어떻게 참을 수 있었는지 묻는 것이다. 나는 농담 반 진담 반 “위구르 언어 포스트닥터 과정까지 거쳤지. 준지2년, 대학5년, 석사3년, 박사과정3년, 그리고 포스트닥터3년이면 딱 16년이니까 말이야...”라고 대답했다.
그 어떤 말로도 그 모든 상황을 전부 담을 수는 없다. 이런 대답으로 나와 같은 지식인들이 겪었던 그 시대의 비극성을 은폐하려는 것도 아니다. 또한 아Q식의 정신승리를 떠들어대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진정한 정신의 승리가 확실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기만하거나 마비시키지 않으며, 계속 배우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배움은 정신적 승리뿐만 아니라 미래의 승리를 이끌어내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배움이야말로 재능 있는 사람들을 고난과 곤경에 빠지게 하는 사람들에게 저항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안이다.
무엇 때문에 미치지 않고 자살하지 않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또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내게는 오로지 ‘구제불능의 낙관주의적’ 생활과 대중(위구르족 농민)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내 젋은 시절 투신했던 혁명은 고난과 곡절로 점철되었지만, 그것은 외부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고난이었기 때문에 그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역사와 그 현상에 대해 그들이 바라는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고 격렬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각자의 출발점, 사색의 시점 그리고 신념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통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36-37쪽
이제 언어를 배우는 것에 대해 언급해볼까 한다. 나는 학습 중에 언어를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배움은 없다고 강조하고 싶다. 한 가지 이상의 언어를 더 배운다는 것은 단순하게 창문 하나를 더 열어 지식의 새로운 다리를 건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두뇌와 생명을 얻는 것이며, 그 다리를 건너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다. 중국에는 외국어를 배우는 것을 거부하는 여러 이론과 주장이 있다.
40-41쪽
또 하나 재미있는 이론도 있다. 이제는 너무 늙어서 외국어를 배울 수 없다는 이론이다. 여기 나보다 젊은 친구가 있다. 그는 아직 마흔도 채 되지 않은 작가로 영어를 아는 친구를 만나면 떠듬떠듬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그런 다음 한숨을 쉬며 말한다.
“왕선생님, 선생님의 말씀이 정말 옳습니다. 영어는 꼭 배워야 합니다.”
“그럼 빨리 배워요.”
내가 한 마디 던져주면 그만 풀죽은 대답이 돌아온다.
“안돼요, 저는 너무 나이가 많아요.”
내가 정식으로 영어를 배울 당시 내 나이는 지금의 그 보다 몇 살이나 더 많았다.
나는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중학교에 다닐 때 영어를 배웠다. 일주일에 다섯 번의 영어 수업이 있었고, 수업 시간은 50분이었다. 그러나 해방 후에는 전혀 영어를 배우지 못했다. 일찍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혁명에 참여하느라 영어를 배울 틈이 없었다. 그리고 이 기간에는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러시아어를 배웠다.
세월은 흘러 내 나이 46세가 되었을 때였다. 나는 그 때 처음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당시 내 영어 수준은 26개의 알파벳과 good-bye, thank you만 알 정도였다.
그해 8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의 사건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 탑승 수속을 끝내고 티켓을 손에 쥐었지만, 우리는 어느 통로로 나가야 아이오와행 비행기를 탈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를 안내하는 사람은 샌프란시스코 주재 중국 영사관의 교무영사였는데, 그녀도 영어를 몰랐다. 나와 함께 동행했던 노시인과 그의 아내도 영어를 몰랐다. 그곳에서 영어를 아는 중국인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정말 난처한 상황이었다. 내가 영어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적어도 공항에서 탑승 통로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라도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이미 46세였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하루에 영어 단에 30개씩을 암기하기로 결심했다.
42-43쪽
또 어떤 사람은 자기는 아둔하기 때문에 외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고 말한다. 정말 열심히 공을 들여 공부를 했는데도 잘 배우지 못했다면, 그 누구도 질책하지 않을 것이다. 힘써 배우고 그 결과 일정한 성과를 얻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총명하다고 한다. 그러나 열심히 배우지도 않고 노력도 하지 않으며 자기를 아둔한 사람이라고 미리 점찍어 놓는 사람들이 많다. “둔한 새가 먼저 난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둔하기 때문에 남보다 더 열심히 배우면 먼저 날고 높이 날게 된다는 의미다.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보다 아둔해졌는가? 아니면 아둔하기 때문에 배우지 않는가? 배움은 사람을 총명하게 하는가? 아니면 총명하기 때문에 배움을 즐거움으로 삼는가? (중략)
배움은 내가 그 어떤 경우에 처하더라도 진취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창작을 허락하지 않아도,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해도, 이름을 낼 수 없어도, 중요 활동에 참가하지 못해도 좌절하지 않게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미치거나 자살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 누구도 나의 학습을 금지하지 못했으니까.
<나는 학생이다>(52-55쪽)
쟈핑와(賈平凹 : 중국 섬서성 서안 시에 거주하고 있는 저명한 소설가. 대표작으로는 <<폐도>>가 있음-옮긴이)의 명언 한 마디가 있다. 그는 “나는 농민이다”라고 자칭하고 있는데, 이는 진실하고 절절하다. 쟈핑와의 이 말을 듣고, 나는 줄곧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했다. (중략)
이런 생각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정말 내가 누구인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학생이었다! 내가 일생 동안 학생의 신분이었다는 이 깨달음은 대단히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렇다! 나는 학생일 뿐이었다. 비록 나의 학력은 고등학교 일 학년에서 그쳤지만, 그 이후 나는 조금도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나는 끊임없이 읽었으며, 각 분야의 지식들을 쌓아나갔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모든 사람들을 스승으로 모셨고, 곳곳에 나의 교실이 있었고, 시시각각 언제나 학기중이었다. 공교롭게도 나의 공무원 이력서 출신 칸을 살펴보니, 거기에도 이미 학생이라고 적혀 있었다.
63쪽
독서는 학습이다. 학습의 재료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예를 들어 위구르어를 배울 때, 나는 해방 초기 신장성 행정간부학교의 교과서를 이용했다. 나는 그 교과서를 통해 자모, 발음, 서사와 단어, 단문 그리고 간단한 대화를 배웠다.
그후 1960년대쯤에 <<중국어문>> 잡지 한 부를 구해서 보았는데, 그 잡지에 중국과학원 사회과학부 민족연구소 주즈닝 연구원이 쓴 <간단한 위구르어 소개>란 글이 개제되어 있었다. 나는 이 글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한 단락을 배운 다음 그것을 다시 복습하는 방식으로 주 선생의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러던 중 한 위구르 농민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말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주 선생의 문장에서 그 말에 관한 대목을 찾아보았다. 농민의 말은 이미 그 문장에 언급되어 있었다. 나는 위구르어의 어법, 변화 규칙, 발음 규칙, 조어법, 단어의 기원 등 모든 것을 주 선생의 문장을 통해 배웠다. 주 선생은 아직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나의 대은사이다.
78쪽
마오쩌둥은 이런 말을 했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어리석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마오쩌둥이 책 속의 지식을 경시했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이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마오쩌둥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대단히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이다. 당신이 중남해에 있는 그의 옛집을 방문한다면,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가 사용했던 방의 3분의 1이 모두 책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책을 좋아한 마오쩌둥이 어떻게 독서를 반대한단 말인가? 마오쩌둥은 만년에 “진지하게 책을 읽고 학습하여 마르크시즘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중요한 지시도 내렸다.
<개혁, 개방 시대와 언어>(345-쪽)
1987년 늦가을, 그날 점심 때 티베트가무단을 초청해 간단한 오찬을 함께했다. 중앙민족사무위원회 주석 스마이 마이마이티(위구르족임-옮긴이)가 연설할 때, 나는 그에게 위구르어로 연설하라고 부추겼다. 그리고 내가 통역을 담당하겠다고 나섰다. 사양하던 그가 결국 나의 뜻에 따랐다. 그 결과 오찬 참석자들이 와르르 웃음꽃을 피웠다.
나는 위구르어 듣기를 좋아한다. 나는 위구르어를 사랑한다. 나는 각 민족들이 자기 민족어로 유창하게 대담하고, 자기 뜻을 전단하며, 기분 좋게 교류하는 그 정경에 도취되곤 한다. 나는 위구르어를 말할 수 있는 그 어떤 기회도 놓치려 하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기회를 빌려 나의 위구르어 수준을 높이고 위구르어 수준을 ‘자랑’한다. 위구르어로 말하기 시작하면, 나는 신이 나서 기분이 상쾌해지고 유머스러워지며 생기가 넘친다. 언어는 단순한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문화이며, 생생한 생활의 운치이며, 기묘한 풍광이다. 그것은 자연 풍광이며 인문 경관이기도 하다. 언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기묘한 부분이며, 영원히 잊지 못할 경력이기도 하다.
1960년대 후기의 운명은 나에게 위구르 농민과 함께 일할 기회를 주었다. 정치 풍파가 나를 중국 서부 변경인 이리 하곡의 변두리로 밀어냈다. 나는 그곳에서 위구르어를 배웠기 때문에 입추(立錐)의 자리나마 차지할 수 있었고, 그들의 우의와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평생 쓰고 써도 다 쓰지 못할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 나는 산 설고 물 설은 적막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으며, 나의 정신생활을 충실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위구르어는 배우기가 매우 어렵다. 위구르어의 많은 음은 한어에 없다. 더욱 곤란한 것은 한어의 음과 대체로 비슷한 음은 또 한어와 구별되는데, 그것을 다 알아야만 한다. 문법은 더 복잡해서 얼마나 까다로운지 모른다. 명사 하나에 격이 여섯 개나 있다. 동사는 또 시와 태와 인칭이 붙어 변화가 얼마나 풍부한지 모른다. 어떤 동사는 열 몇 가지 부속 성분이 붙을 수 있다. 하여튼 얼마나 복잡한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위구르어는 완전히 나를 사로잡았으며, 나를 반하게 했다. 위구르어는 춤과 노래에 남다른 재질이 있는 위구르 민족과 연결되어 있다. 위구르어는 투루판 분지의 수박과 포도, 이리와 넨치의 준마, 그리고 잉지사의 허리칼, 카스의 청진사와 향비(香妃 : 청나라 건룡 황제 때 몸에서 향기가 났다는 황비-옮긴이)묘, 허텐의 옥석과 주단에 연결되어 있다.
나는 위구르어의 쩡쩡 울리는 발음과 사람을 기쁘게 하며 춤을 부르는 어조와 독특한 표현 순서를 아주 좋아했다. 나는 틈만 있으며 라디오를 틀어 놓고 위구르어 방송을 들었다. 물론 처음에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알아듣지 못해도 그대로 들었다. 음악을 감상하는 것 처럼 미치고 반한 듯 방송을 청취했다. 두 어린아이들이 하는 말도 옆에서 ‘경청’ 했다. 나는 위구르어를 들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중략)
나는 위구르인과 위구르어로 유창하게 대화한다. 그래서 나는 혀만 하나 더 갖게 된 것이 아니라, 귀도 한 쌍 더 갖게 되었다. 아무런 막힘 없이 다른 말을 알아듣고 그 말의 모든 함의와 색채와 정서를 터득한다는 것은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그리고 눈도 한 쌍 더 갖게 되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꼬불꼬불하게 쓴 위구르 문자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두뇌와 마음을 하나 더 가지게 된 것이다. 외국어 하나를 배움으로써 지식을 얻고, 경험과 이해, 신임과 우의를 얻었다. 나는 위구르 문자로 출판된 서적을 줄줄 읽어내려 갈 수 있었고, 말과 노래를 들을 수 있었고, 위구르인들을 마음 속에 기억하게 되었다. 나는 또 다른 하나의 세계를 갖게 되었다.
나의 벗 왕멍 - 인생을 불태우고 무위로 돌아가는 길가에서/ 허세욱(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서문 - '인생이란 무엇인가' 묻는 당신께/ 인민문학출판사
저자의 말 - 인생은 명랑한 향해
1.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인생이란 집을 짓는 것
좋은 이념은 생존과 일치한다
당신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나는 왜 자살하거나 미치지 않고 견뎌왔는가
언어를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배움은 없다
마흔여섯 살에 영어를 배우다
인생의 향유
2. 나는 학생이다
학습은 나의 뼈와 살
나는 학생이다
같은 강물을 두 번 건널 수 없다
사상은 아름답다
생활 속에서 배워라
배움은 인생의 비밀을 탐색하게 한다
지혜는 새털처럼 가볍다
3. 인생은 절차탁마다
진정한 지혜는 변화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
책을 많이 읽을수록 어리석게 된다?
성숙한 사람은 어떻게 약을 물리치는가
깨우쳐 아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학문은 서로 통한다
입신경지에 이르기 위해
말이란 무엇인가
현실 초월
4. 자유시장경제와 대인관계 숭배
선물과 뇌물은 한치 차이
대인관계
동맹을 만들지 말라
인간관계는 일방통행이 없다
악의 꽃
나의 대인관계 준칙 21조
'망각'은 가장 좋은 인간관계다
5. 노자가 부르는 무위의 노래
'무위'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을 믿어라
우리는 무대에 선 연극배우
나는 내 할 일만 하겠다
노자의 무위관
유위의 행동에서 무위의 철학으로
갈등에 빠지지 말라
'결과'를 내놓는 것이 최선이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무위'는 마음속으로 이해하는 경지
기어이 이기려고 하면 오히려 진다
시간과 정력을 집중할 줄 아는 것도 천재다
인생의 기본선을 지켜야 한다
태어나면서 지난 것
6. 흔들리는 중국의 가치관
인생에는 아끼고 그리워하는 것이 있다
가치의 저울
홀로 창연하게 눈물 흘리다
인생의 '부정 원칙'
'저조원칙'과 '가치민주주의'
'개똥 효과'와 멈출 수 없는 진리 추구
3분의 1율과 황금분할
생명의 의의원칙
가치는 실현하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라
과정이 바로 가치다
7. 어떻게 낙관적 인생이 가능한가
보편적 가치 추구는 건강하다
암세포 철학
개인 숭배는 사교일 뿐이다
'큰' 경지와 '작은' 기쁨
질투는 약자의 격정
방벽을 쌓지 않는다
당신의 세계를 많이 만들어라
'새옹지마'의 교훈
운명의 수학 공식
8. 인생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역경
순경
속경
모든 것은 시시각각 변한다
적막이 좋다
감정을 억제하라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종이 범이 어떻게 들쥐가 되는가?
시간은 가장 위대하다
미덕을 찬양하라
무상과 유상
9. 대도는 술책이 없다
중국인의 개념 숭배
술책과 도
지혜롭지만 모략이 없다
남들이 모르게 하라
네 가지 마음
멋지게 살아라
자신의 악을 바라볼 수 있는가
강철 같이 굳세기를 기원하며
10. 불가능한 것을 알지만 계속 추진하라
인생의 연소 원칙
나는 왜 문학을 선택했는가
냉정과 열정 사이
자기의 표준으로 생각하지 말라
초탈
절대 포기하지 말라
실패가 통하는 길은 결국 승리로 이어진다
11. 마음만 늙지 않는다면 행복이 오네
황혼 철학
집단으로 몰려다니는 벗들은 사귀지 않는다
절대적인 친구는 없다
우정이란 서로 영원히 잊지 않는 것
누가 나와 함께 지난날을 추억할까
취미도 문화이다
홀연히 벗어날 수 있는 경지
남들에게 밉게 보이지 말라
유희는 인류의 천성
우리는 생활의 주인
석양을 바라보며 시를 읊노라
멀지 않았네, 僊뮌?다가오네
12. 인생이 바로 철학이다
나의 처세 철학
유머 감각이 없는 사람은 자살하는 사람이다
개혁 · 개방 시대와 언어
유유자적
점잖은 사람은 지혜롭다
점잖음 재론
희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관용은 왜 필요한가
개방성이란 무엇인가
단순함을 믿는다는 것
자기 연민에 빠지는 사람
세속화에 저항하는 혁명
지식인들의 세속화와 엘리트 추구
삼십대의 당신들에게 주는 조언
가족은 소멸되었는가
나에게는 소부르주아적 감상이 있다
기회란 자본주의의 모순
번뇌란 첫 모금 술의 그 씁쓸한 맛
선량함은 힘이다
격언을 새긴 도장 : 불설방
마음이 가뿐한 사회를 지향한다
왕멍은 늙었노라
생명의 가치를 논하는 시대가 되었다
책을 내고 나서 - 젊은이들과 무릎을 맞대고 인생을 이야기하다
왕멍 연보
왕멍 작품 연표
원서명 : 王蒙自述, 我的人生哲學
저자 : 왕멍(王蒙)
역자 : 임국웅
서지 : 들녘, 2004년
[저자 약력]
1934년 베이징 출생. 1948년(14세)에 중국 공산당의 지하 당원이 되었고, 1958년에는 우파로 낙인찍혀 16년간 신장에 유배되어 살았다. 1979년에 복권되어 베이징으로 귀환. 1950년대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해 48년 동안 1천여만자의 작품을 썼고, 그의 작품은 미국 및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21개의 언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목차]
31쪽
대부분의 상황, 즉 일반적인 상황에서 좋은 이념은 생존과 일치되는 것이지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
사교(邪敎)의 예를 들어보자. 사교는 어떻게 잘 살 것인가에 역점을 두지 않는다. 교주와 교의를 위해 죽는 것에 역점을 두어 자살을 획책하거나 자학하게 만든다. 심지어 자기가 죽는 것으로도 모자라 더 많은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으로 사교의 예언을 증명하려고도 한다. 이처럼 생명을 적대시하고 인류의 생존권을 멸시하는 신앙은 아무리 좋게 설명하려 해도 마땅치 않다.
어떤 사람이 재앙을 피해 혼자 살아남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와 유사한 재앙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반성하며 진지하게 사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아 겨우 생존한 그 사람을 도리어 문책한다. 당신만 왜 살아남았는지 문책하는 것이다. 이는 그에게 살아 있음을 치욕으로 느끼게 만든다. 그가 다시는 고개를 들고 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당신만 왜 살아남았는가? 이런 질문이야말로 살아남은 사람 자신만이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생존권은 가장 우선시되는 인권이다. 사람들이 어렵게 살아남은 그 한 사람을 질책한다는 것은 정말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33쪽 나에게 배움은 타인에 의해 결코 박탈당하지 않는 유일한 권리였다.
<나는 왜 자살하거나 미치지 않고 견뎌왔는가>(34-36쪽)
사실은 역경에 처해 있을 때가 가장 배우기 좋은 상황이다.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여서 그 효과도 가장 크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시기에는 쉽게 방만하게 되며, 주위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친구, 추종자, 수행자, 이름을 듣고 찾아온 사람, 찾아와서 배움을 청하는 사람 등등-이 몰려든다. 이 시기에 당신은 강연을 하고, 글을 쓰며, 의견을 발표하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입장에 서게 된다. 또한 이 시기의 당신은 신념으로 가득 차 타인의 결점만 볼 것이다. 당신은 사회와 대중이 당신에게 거는 기대를 뿌듯하게 생각하고, 이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각종 행사와 회식에 참석하는 횟수와 시간이 늘어난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당신이 확실히 그 자리에 있었음을 표시하는 것에 불과하다.
역경에 처해 있을 때,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한쪽 구석에 던져져 있을 때, 그리고 ‘접촉불가’, ‘혁명불가’라는 딱지가 붙어 있을 때가 바로 아무런 방해 없이 배움에 전력투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이며, 사색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또한 경험을 집약하고 엄격하게 자신을 반성하며 되돌아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이다. 그리고 이 시기를 통해 당신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굳건하게 키워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따라서 지식을 얻고, 재주를 익히며, 자신에 대해 각성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라 하겠다.
문화대혁명(1966-76) 시기에 나는 신장의 위구르족과 함께 농촌에 거주하고 있었다. 극좌파가 득세하던 시기라 나는 우파로 분류되어 창작조차 할 수 없었고, 직업을 구할 수 없었으며, 정상적인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도 없었다. 때문에 나는 공개적으로 학습하는 것도 허락받지 못했다. 이때 나는 농촌 간부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모 주석의 저작을 학습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모 주석의 저작들을 어떻게 학습했는가? 나는 이 저작들을 위구르어로 암기했다. 이것이 내가 뒤늦게 위구르어를 배우게 되었던 이유이다. 나는 그때 모 주석의 3대 저작(<<인민을 위해 복무하자>>, <<바이췬을 기념하여>>, <<우공이산>>-옮긴이)뿐만 아니라 다른 어록들도 줄줄 암송했다. 한 번은 위구르어로 <<바이췬을 기념하여>>라는 문장을 큰 소리로 낭독한 적이 있는데, 주인집 아주머니는 방송국에서 방송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내 위구르어 발음이 얼마나 정확한지 설명해주는 일화이다.
외국의 벗들은 어떻게 16년이란 세월을 신장의 농촌 지역에서 보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들은 나에게 어떻게 자살하거나 미치지 않고 견딜 수 있었는지 물었다. 16년이란 기나긴 세월의 공허와 고통을 어떻게 참을 수 있었는지 묻는 것이다. 나는 농담 반 진담 반 “위구르 언어 포스트닥터 과정까지 거쳤지. 준지2년, 대학5년, 석사3년, 박사과정3년, 그리고 포스트닥터3년이면 딱 16년이니까 말이야...”라고 대답했다.
그 어떤 말로도 그 모든 상황을 전부 담을 수는 없다. 이런 대답으로 나와 같은 지식인들이 겪었던 그 시대의 비극성을 은폐하려는 것도 아니다. 또한 아Q식의 정신승리를 떠들어대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진정한 정신의 승리가 확실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기만하거나 마비시키지 않으며, 계속 배우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배움은 정신적 승리뿐만 아니라 미래의 승리를 이끌어내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배움이야말로 재능 있는 사람들을 고난과 곤경에 빠지게 하는 사람들에게 저항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안이다.
무엇 때문에 미치지 않고 자살하지 않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또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내게는 오로지 ‘구제불능의 낙관주의적’ 생활과 대중(위구르족 농민)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내 젋은 시절 투신했던 혁명은 고난과 곡절로 점철되었지만, 그것은 외부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고난이었기 때문에 그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역사와 그 현상에 대해 그들이 바라는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고 격렬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각자의 출발점, 사색의 시점 그리고 신념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통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36-37쪽
이제 언어를 배우는 것에 대해 언급해볼까 한다. 나는 학습 중에 언어를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배움은 없다고 강조하고 싶다. 한 가지 이상의 언어를 더 배운다는 것은 단순하게 창문 하나를 더 열어 지식의 새로운 다리를 건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두뇌와 생명을 얻는 것이며, 그 다리를 건너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다. 중국에는 외국어를 배우는 것을 거부하는 여러 이론과 주장이 있다.
40-41쪽
또 하나 재미있는 이론도 있다. 이제는 너무 늙어서 외국어를 배울 수 없다는 이론이다. 여기 나보다 젊은 친구가 있다. 그는 아직 마흔도 채 되지 않은 작가로 영어를 아는 친구를 만나면 떠듬떠듬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그런 다음 한숨을 쉬며 말한다.
“왕선생님, 선생님의 말씀이 정말 옳습니다. 영어는 꼭 배워야 합니다.”
“그럼 빨리 배워요.”
내가 한 마디 던져주면 그만 풀죽은 대답이 돌아온다.
“안돼요, 저는 너무 나이가 많아요.”
내가 정식으로 영어를 배울 당시 내 나이는 지금의 그 보다 몇 살이나 더 많았다.
나는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중학교에 다닐 때 영어를 배웠다. 일주일에 다섯 번의 영어 수업이 있었고, 수업 시간은 50분이었다. 그러나 해방 후에는 전혀 영어를 배우지 못했다. 일찍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혁명에 참여하느라 영어를 배울 틈이 없었다. 그리고 이 기간에는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러시아어를 배웠다.
세월은 흘러 내 나이 46세가 되었을 때였다. 나는 그 때 처음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당시 내 영어 수준은 26개의 알파벳과 good-bye, thank you만 알 정도였다.
그해 8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의 사건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 탑승 수속을 끝내고 티켓을 손에 쥐었지만, 우리는 어느 통로로 나가야 아이오와행 비행기를 탈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를 안내하는 사람은 샌프란시스코 주재 중국 영사관의 교무영사였는데, 그녀도 영어를 몰랐다. 나와 함께 동행했던 노시인과 그의 아내도 영어를 몰랐다. 그곳에서 영어를 아는 중국인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정말 난처한 상황이었다. 내가 영어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적어도 공항에서 탑승 통로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라도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이미 46세였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하루에 영어 단에 30개씩을 암기하기로 결심했다.
42-43쪽
또 어떤 사람은 자기는 아둔하기 때문에 외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고 말한다. 정말 열심히 공을 들여 공부를 했는데도 잘 배우지 못했다면, 그 누구도 질책하지 않을 것이다. 힘써 배우고 그 결과 일정한 성과를 얻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총명하다고 한다. 그러나 열심히 배우지도 않고 노력도 하지 않으며 자기를 아둔한 사람이라고 미리 점찍어 놓는 사람들이 많다. “둔한 새가 먼저 난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둔하기 때문에 남보다 더 열심히 배우면 먼저 날고 높이 날게 된다는 의미다.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보다 아둔해졌는가? 아니면 아둔하기 때문에 배우지 않는가? 배움은 사람을 총명하게 하는가? 아니면 총명하기 때문에 배움을 즐거움으로 삼는가? (중략)
배움은 내가 그 어떤 경우에 처하더라도 진취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창작을 허락하지 않아도,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해도, 이름을 낼 수 없어도, 중요 활동에 참가하지 못해도 좌절하지 않게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미치거나 자살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 누구도 나의 학습을 금지하지 못했으니까.
<나는 학생이다>(52-55쪽)
쟈핑와(賈平凹 : 중국 섬서성 서안 시에 거주하고 있는 저명한 소설가. 대표작으로는 <<폐도>>가 있음-옮긴이)의 명언 한 마디가 있다. 그는 “나는 농민이다”라고 자칭하고 있는데, 이는 진실하고 절절하다. 쟈핑와의 이 말을 듣고, 나는 줄곧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했다. (중략)
이런 생각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정말 내가 누구인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학생이었다! 내가 일생 동안 학생의 신분이었다는 이 깨달음은 대단히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렇다! 나는 학생일 뿐이었다. 비록 나의 학력은 고등학교 일 학년에서 그쳤지만, 그 이후 나는 조금도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나는 끊임없이 읽었으며, 각 분야의 지식들을 쌓아나갔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모든 사람들을 스승으로 모셨고, 곳곳에 나의 교실이 있었고, 시시각각 언제나 학기중이었다. 공교롭게도 나의 공무원 이력서 출신 칸을 살펴보니, 거기에도 이미 학생이라고 적혀 있었다.
63쪽
독서는 학습이다. 학습의 재료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예를 들어 위구르어를 배울 때, 나는 해방 초기 신장성 행정간부학교의 교과서를 이용했다. 나는 그 교과서를 통해 자모, 발음, 서사와 단어, 단문 그리고 간단한 대화를 배웠다.
그후 1960년대쯤에 <<중국어문>> 잡지 한 부를 구해서 보았는데, 그 잡지에 중국과학원 사회과학부 민족연구소 주즈닝 연구원이 쓴 <간단한 위구르어 소개>란 글이 개제되어 있었다. 나는 이 글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한 단락을 배운 다음 그것을 다시 복습하는 방식으로 주 선생의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러던 중 한 위구르 농민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말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주 선생의 문장에서 그 말에 관한 대목을 찾아보았다. 농민의 말은 이미 그 문장에 언급되어 있었다. 나는 위구르어의 어법, 변화 규칙, 발음 규칙, 조어법, 단어의 기원 등 모든 것을 주 선생의 문장을 통해 배웠다. 주 선생은 아직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나의 대은사이다.
78쪽
마오쩌둥은 이런 말을 했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어리석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마오쩌둥이 책 속의 지식을 경시했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이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마오쩌둥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대단히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이다. 당신이 중남해에 있는 그의 옛집을 방문한다면,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가 사용했던 방의 3분의 1이 모두 책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책을 좋아한 마오쩌둥이 어떻게 독서를 반대한단 말인가? 마오쩌둥은 만년에 “진지하게 책을 읽고 학습하여 마르크시즘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중요한 지시도 내렸다.
<개혁, 개방 시대와 언어>(345-쪽)
1987년 늦가을, 그날 점심 때 티베트가무단을 초청해 간단한 오찬을 함께했다. 중앙민족사무위원회 주석 스마이 마이마이티(위구르족임-옮긴이)가 연설할 때, 나는 그에게 위구르어로 연설하라고 부추겼다. 그리고 내가 통역을 담당하겠다고 나섰다. 사양하던 그가 결국 나의 뜻에 따랐다. 그 결과 오찬 참석자들이 와르르 웃음꽃을 피웠다.
나는 위구르어 듣기를 좋아한다. 나는 위구르어를 사랑한다. 나는 각 민족들이 자기 민족어로 유창하게 대담하고, 자기 뜻을 전단하며, 기분 좋게 교류하는 그 정경에 도취되곤 한다. 나는 위구르어를 말할 수 있는 그 어떤 기회도 놓치려 하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기회를 빌려 나의 위구르어 수준을 높이고 위구르어 수준을 ‘자랑’한다. 위구르어로 말하기 시작하면, 나는 신이 나서 기분이 상쾌해지고 유머스러워지며 생기가 넘친다. 언어는 단순한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문화이며, 생생한 생활의 운치이며, 기묘한 풍광이다. 그것은 자연 풍광이며 인문 경관이기도 하다. 언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기묘한 부분이며, 영원히 잊지 못할 경력이기도 하다.
1960년대 후기의 운명은 나에게 위구르 농민과 함께 일할 기회를 주었다. 정치 풍파가 나를 중국 서부 변경인 이리 하곡의 변두리로 밀어냈다. 나는 그곳에서 위구르어를 배웠기 때문에 입추(立錐)의 자리나마 차지할 수 있었고, 그들의 우의와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평생 쓰고 써도 다 쓰지 못할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 나는 산 설고 물 설은 적막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으며, 나의 정신생활을 충실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위구르어는 배우기가 매우 어렵다. 위구르어의 많은 음은 한어에 없다. 더욱 곤란한 것은 한어의 음과 대체로 비슷한 음은 또 한어와 구별되는데, 그것을 다 알아야만 한다. 문법은 더 복잡해서 얼마나 까다로운지 모른다. 명사 하나에 격이 여섯 개나 있다. 동사는 또 시와 태와 인칭이 붙어 변화가 얼마나 풍부한지 모른다. 어떤 동사는 열 몇 가지 부속 성분이 붙을 수 있다. 하여튼 얼마나 복잡한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위구르어는 완전히 나를 사로잡았으며, 나를 반하게 했다. 위구르어는 춤과 노래에 남다른 재질이 있는 위구르 민족과 연결되어 있다. 위구르어는 투루판 분지의 수박과 포도, 이리와 넨치의 준마, 그리고 잉지사의 허리칼, 카스의 청진사와 향비(香妃 : 청나라 건룡 황제 때 몸에서 향기가 났다는 황비-옮긴이)묘, 허텐의 옥석과 주단에 연결되어 있다.
나는 위구르어의 쩡쩡 울리는 발음과 사람을 기쁘게 하며 춤을 부르는 어조와 독특한 표현 순서를 아주 좋아했다. 나는 틈만 있으며 라디오를 틀어 놓고 위구르어 방송을 들었다. 물론 처음에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알아듣지 못해도 그대로 들었다. 음악을 감상하는 것 처럼 미치고 반한 듯 방송을 청취했다. 두 어린아이들이 하는 말도 옆에서 ‘경청’ 했다. 나는 위구르어를 들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중략)
나는 위구르인과 위구르어로 유창하게 대화한다. 그래서 나는 혀만 하나 더 갖게 된 것이 아니라, 귀도 한 쌍 더 갖게 되었다. 아무런 막힘 없이 다른 말을 알아듣고 그 말의 모든 함의와 색채와 정서를 터득한다는 것은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그리고 눈도 한 쌍 더 갖게 되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꼬불꼬불하게 쓴 위구르 문자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두뇌와 마음을 하나 더 가지게 된 것이다. 외국어 하나를 배움으로써 지식을 얻고, 경험과 이해, 신임과 우의를 얻었다. 나는 위구르 문자로 출판된 서적을 줄줄 읽어내려 갈 수 있었고, 말과 노래를 들을 수 있었고, 위구르인들을 마음 속에 기억하게 되었다. 나는 또 다른 하나의 세계를 갖게 되었다.
나의 벗 왕멍 - 인생을 불태우고 무위로 돌아가는 길가에서/ 허세욱(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서문 - '인생이란 무엇인가' 묻는 당신께/ 인민문학출판사
저자의 말 - 인생은 명랑한 향해
1.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인생이란 집을 짓는 것
좋은 이념은 생존과 일치한다
당신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나는 왜 자살하거나 미치지 않고 견뎌왔는가
언어를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배움은 없다
마흔여섯 살에 영어를 배우다
인생의 향유
2. 나는 학생이다
학습은 나의 뼈와 살
나는 학생이다
같은 강물을 두 번 건널 수 없다
사상은 아름답다
생활 속에서 배워라
배움은 인생의 비밀을 탐색하게 한다
지혜는 새털처럼 가볍다
3. 인생은 절차탁마다
진정한 지혜는 변화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
책을 많이 읽을수록 어리석게 된다?
성숙한 사람은 어떻게 약을 물리치는가
깨우쳐 아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학문은 서로 통한다
입신경지에 이르기 위해
말이란 무엇인가
현실 초월
4. 자유시장경제와 대인관계 숭배
선물과 뇌물은 한치 차이
대인관계
동맹을 만들지 말라
인간관계는 일방통행이 없다
악의 꽃
나의 대인관계 준칙 21조
'망각'은 가장 좋은 인간관계다
5. 노자가 부르는 무위의 노래
'무위'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을 믿어라
우리는 무대에 선 연극배우
나는 내 할 일만 하겠다
노자의 무위관
유위의 행동에서 무위의 철학으로
갈등에 빠지지 말라
'결과'를 내놓는 것이 최선이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무위'는 마음속으로 이해하는 경지
기어이 이기려고 하면 오히려 진다
시간과 정력을 집중할 줄 아는 것도 천재다
인생의 기본선을 지켜야 한다
태어나면서 지난 것
6. 흔들리는 중국의 가치관
인생에는 아끼고 그리워하는 것이 있다
가치의 저울
홀로 창연하게 눈물 흘리다
인생의 '부정 원칙'
'저조원칙'과 '가치민주주의'
'개똥 효과'와 멈출 수 없는 진리 추구
3분의 1율과 황금분할
생명의 의의원칙
가치는 실현하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라
과정이 바로 가치다
7. 어떻게 낙관적 인생이 가능한가
보편적 가치 추구는 건강하다
암세포 철학
개인 숭배는 사교일 뿐이다
'큰' 경지와 '작은' 기쁨
질투는 약자의 격정
방벽을 쌓지 않는다
당신의 세계를 많이 만들어라
'새옹지마'의 교훈
운명의 수학 공식
8. 인생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역경
순경
속경
모든 것은 시시각각 변한다
적막이 좋다
감정을 억제하라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종이 범이 어떻게 들쥐가 되는가?
시간은 가장 위대하다
미덕을 찬양하라
무상과 유상
9. 대도는 술책이 없다
중국인의 개념 숭배
술책과 도
지혜롭지만 모략이 없다
남들이 모르게 하라
네 가지 마음
멋지게 살아라
자신의 악을 바라볼 수 있는가
강철 같이 굳세기를 기원하며
10. 불가능한 것을 알지만 계속 추진하라
인생의 연소 원칙
나는 왜 문학을 선택했는가
냉정과 열정 사이
자기의 표준으로 생각하지 말라
초탈
절대 포기하지 말라
실패가 통하는 길은 결국 승리로 이어진다
11. 마음만 늙지 않는다면 행복이 오네
황혼 철학
집단으로 몰려다니는 벗들은 사귀지 않는다
절대적인 친구는 없다
우정이란 서로 영원히 잊지 않는 것
누가 나와 함께 지난날을 추억할까
취미도 문화이다
홀연히 벗어날 수 있는 경지
남들에게 밉게 보이지 말라
유희는 인류의 천성
우리는 생활의 주인
석양을 바라보며 시를 읊노라
멀지 않았네, 僊뮌?다가오네
12. 인생이 바로 철학이다
나의 처세 철학
유머 감각이 없는 사람은 자살하는 사람이다
개혁 · 개방 시대와 언어
유유자적
점잖은 사람은 지혜롭다
점잖음 재론
희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관용은 왜 필요한가
개방성이란 무엇인가
단순함을 믿는다는 것
자기 연민에 빠지는 사람
세속화에 저항하는 혁명
지식인들의 세속화와 엘리트 추구
삼십대의 당신들에게 주는 조언
가족은 소멸되었는가
나에게는 소부르주아적 감상이 있다
기회란 자본주의의 모순
번뇌란 첫 모금 술의 그 씁쓸한 맛
선량함은 힘이다
격언을 새긴 도장 : 불설방
마음이 가뿐한 사회를 지향한다
왕멍은 늙었노라
생명의 가치를 논하는 시대가 되었다
책을 내고 나서 - 젊은이들과 무릎을 맞대고 인생을 이야기하다
왕멍 연보
왕멍 작품 연표


덧글
레이먼 2009/08/11 09:44 # 삭제 답글
트랙백을 따라 왔다가 여기까지 왔네요.아는 블로거를 통해서 이책의 제목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막상 글의 내용을 직접 읽어보니 많은 자극이 되네요.
다음에 꼭 읽어 보고 싶습니다. 글 잘 보고 갑니다.
헤르모드 2009/08/11 10:04 #
레이먼님 반갑습니다.저도 이 덧글을 달기 위해 왕멍 선생의 글을 다시 읽으며 재삼 자극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학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