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지 <<우리 안의 유럽, 기원과 시작>> 북동 유라시아의 전쟁과 문헌

  김미지 선생님으로부터 <<우리 안의 유럽, 기원과 시작>>(생각의 힘, 2019)을 증정받았습니다.  19-20세기 전환기의 한반도 주민들이 유럽을 경험하고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을 잘 엮은 책입니다.  

  17-20세기 동부 유라시아에서 한-러-일-중-미가 관계한 사실에 관심이 있는 저는 특히 제4장의 첫 절 <시베리아 철도로 닿을 수 있는 그곳, "세계일주가"가 노래한 유럽>이 흥미로웠습니다.  아래 인용한 부분은 실로 예리한 관찰이라고 하겠습니다.  다만 이 시기에 일본 군부에서는 한반도-만몽-시베리아 진출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대일본제국"의 일부던 한반도에서 일어난 논의를 검토할 필요는 있겠습니다.

일본에서는 19세기 말부터 세계일주에 대한 논의가 등장했고 실제 세계일주 기행서, 안내서가 나오기 시작했다. ... 일찍이 1910년대에 최남선은 세계일주라는 아득한 꿈과 저 먼 나라들의 이야기를 창가의 형식으로 펼쳐내 보인 적이 있다.  1914년 10월 잡지 <<청춘>>의 창간호 부록으로 실린 "세계일주가"가 그것인데 ... 이 작품은 그에 앞서 나왔던 일본의 세계여행 안내서나 기행문과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섬나라 일본에서 세계일주를 하는 여정은 거의 예외 없이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 또는 미국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최남선이 노래한 세계일주는 구아연락열차, 즉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로부터 시작해서 유럽을 여행한 후 대서양을 건너가는 여정이다.  꼭 백여 년 전 최남선은 종횡으로 뻗어간 조선의 철도가 세계 대교통로가 되어 북방으로 유럽으로 통하게 되었으니 그 중심인 평양이 장래에 세계적인 대도회지가 될 것이라 장담한다. (171-172쪽)

  한편, 책의 머릿말에서 김미지 선생은 20세기 전기 한반도의 주민들이 나치 독일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음을 튀빙겐대학의 특강에서 소개한 데 대해, 한 학생이 다음과 같이 의문을 제기했고 이에 대해 어떻게 답변했는지 소개합니다.

아무리 그렇다손 치더라도 나혜석이 저 문장을 쓴 1933년은 히틀러가 독일에서 집권하고 제3제국이 성립한 뒤의 일이 아니냐고, 그런데도 독일을 여전히 문명국가로 칭송할 수가 있었느냐는 질문이었다. ...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1933년이면 이미 한국에도 히틀러의 소식쯤은 진작 들어와 있었고, 당시 한국의 신문, 잡지 기사들을 통해 독일이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인다는 위기의식 역시 상당히 팽배했던 것이 사실이다. (11쪽)

  이 대목을 읽으면서 저는, "대일본제국"의 일부로서의 한반도에 살던 주민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나치 독일과 히틀러를 경계했음은 사실이지만, 그와 동시에 어떤 사람들은 "대일본제국" 내의 일반적인 분위기에 따라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적극적으로 칭송했음도 떠올렸습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해방이 된 후에도 여전히 히틀러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면서 현대 한국을 그러한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문영 선생의 다음 컬럼이 참고가 됩니다.  

이들은 정치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1981년에는 국회 공청회를 열게 했다. 국회 공청회에서 맹활약한 사람이 후일 <환단고기>의 번역서 <한단고기>를 출간한 임승국이다. 임승국은 1980년 5월 광주의 피가 마르기도 전 전두환을 향해 “가장 뛰어난 영단을 지닌 민족지도자”라고 칭송하며 국사광복을 가져와달라고 애걸한 사람이다. 그는 아예 대놓고 국수주의를 하자며 역사학자를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신독재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에서도 그는 ‘철학 있는 독재는 설득력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회에서 히틀러를 인용하고 독일과 일본이 세계를 상대로 싸운 것을 칭송하는 듯한 발언까지 한다.

<환상적 민족주의에 젖은 ‘위대한 상고사’ - “우리 민족이 전세계를 선도했다” 책 <환단고기>로 대표되는 유사역사학의 계보와 주장>

  위서를 증거 삼아 한민족의 위대함을 주장하는 사이비역사학자들은, 말하자면 제국주의 일본의 마지막 잔존세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0세기 후반의 한국에는 일본-만주의 모델(유신!)을 구현하려 한 지배 세력과, 이들에 대한 저항 수단으로서 "위대한 한민족"을 내세운 근본적 민족주의 세력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사이비 역사학자들이 이용하는 위서들이 20세기 전기 일본의 위서들과 어떤 관련을 갖는지에 대해서는 글을 쓴 바 있습니다.

<위서 비판에서 위서 연구로 ― 일본 위서의 검토 및 한국 위서와의 비교>

  19세기 말부터 "본격화된" 한반도 주민의 유럽 발견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일본/미국이라는 세 개의 프리즘을 동시에 이용해야 할 것입니다.  학부에서 서양사를 공부했고 베이징대학에서 다년간 체류한 경험을 지니는 김미지 선생님은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기에 적절한 위치에 계시다고 이해됩니다.  유용함과 동시에 재미있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