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서 <<고문서 반납 여행>>이 출간되었습니다. 집필활동 및 수상.선정

번역서 <<고문서 반납여행 - 전후 일본 사학사의 한 컷>>이 출간되었습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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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의 글과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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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책이다. 단숨에 거의 다 읽었다. 가히 아름다운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_정민 한양대 교수, 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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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일본학, 동아시아학 문헌학 관련링크 문헌학

국회도서관 http://dl.ndl.go.jp/
에도시대의 일본 네덜란드 교류 http://www.ndl.go.jp/nichiran/index.html

국립공문서관 디지털 아카이브 https://www.digital.archives.go.jp/

와세다대학 고전적종합데이터베이스http://www.wul.waseda.ac.jp/kotenseki/index.html
와세다대학 연극박물관 연극정보종합데이터베이스 http://www.enpaku.waseda.ac.jp/db/



나라문화재연구소 목간 데이터베이스 http://mokkanko.nabunken.go.jp/ja/

立命館大学 アート・リサーチセンター | プロジェクトアーカイブ一覧

우키요에 검색 浮世絵検索 http://ja.ukiyo-e.org
우키요에시 총람 浮世絵師総覧 http://www.ne.jp/asahi/kato/yoshio/fram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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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錦絵型録インデックス http://www.tku.ac.jp/~library/korea/E002.HTML
日清戦争錦絵美術館 https://nissinsensonishikie.jimdo.com

<<니벨스코이 Г. И. Невельской: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 북동 유라시아의 전쟁과 문헌

아무르강 하구가 지리학적으로 확인되면서, 시베리아는 거대한 냉장고에서 러시아와 유럽 문명이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관문으로 바뀌었습니다.

<망명중이던 알렉산드르 게르첸이 1857년에 이탈리아 혁명가 주세페 마치니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아무르강 하구 지역을 정복한 것은 문명의 가장 위대한 발걸음들 가운데 하나이다 Завоевание устьев Амура является одним из самых крупных шагов цивилизации".>

러시아에 유학중인 지인이 전달해준 <<니벨스코이 Г. И. Невельской: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를 오늘 새벽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 지도 Атлас российской>> 1745년에 보이는 북동유라시아 지역 북동 유라시아의 전쟁과 문헌

<<러시아 지도 Атлас российской>> 1745년에 보이는 북동유라시아 지역

https://dlib.rsl.ru/viewer/01003340081#?page=39

안승준 <<조선전기 사노비의 사회 경제적 성격>> (경인문화사, 2007) 문헌학

존경하는 안승준 선생님의 <<조선전기 사노비의 사회 경제적 성격>> (경인문화사, 2007) 을 완독했습니다. 이 책의 취지는 서문의 다음 한 줄로 요약됩니다:


"우리 전통사회의 대표적 악법 또는 모순을 들자면 필자는 주저 없이 노비세전법과 노비신분법을 꼽는다. 노비의 삶과 희망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던 이 법은 고대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관철되었으나, 법전에 명문화되었던 것이 아니라 당시 사회의 관행이다. 노비 소유주인 국가(왕실)와 귀족 양반들의 이익을 대변한 이러한 관행은 크나큰 사회적 모순으로 작용하면서 급기야 15~17세기에 이르러서는 당시 인구의 절반 이상이 노비가 되는, 그래서 서양 연구자에 의해 이 시기를 노예제 사회라고 부르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실제로 조선전기 조선왕조실록에는 노비 기사로 점철되어 있고, 사가(私家)의 고문서를 통해 보면 500~700 여구(口)에 달하는 노비를 보유한 양반가도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


그렇게 중국의 제도를 본뜬다고 하면서도 노비제도는 없애기는 커녕 오히려 강화하고, 그렇게 오랑캐 취급하던 일본에서도 에도시대에 소멸한 노비제도에 대해 20세기까지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이, 그리하여 전 인구 가운데 많은 수를 비자유인의 상태로 둔 것이, 동아시아 삼국 가운데 조선만이 20세기에 독립을 잃은 이유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노비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고 계신 안승준 선생님의 작업을 존경심과 함께 지켜보는 이유입니다.


노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한반도•한국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김대중 <<풍석 서유구 산문 연구>>(돌베개, 2018) 독서 기록

서강대 김대중 선생의 신작 <<풍석 서유구 산문 연구>>(돌베개, 2018)를 받고, 그 자리에서 다 읽었습니다. 제가 가장 흥미를 느끼고 있는 <소반을 만들며>라는 글을 쓴 19세기 조선의 심대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서유구(1764-1845)는 흥미로운 주장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리고, 김대중 선생은 그에 대해 흥미로운 접근을 이 연구서에서 시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서유구 역시 심대윤과 비슷한 관점으로 당시 조선 사회를 바라보았습니다. <심대윤의 선배 서유구는 이렇게 비꼰 적이 있다. “우리 동방의 사대부는 10대조 이상에서 벼슬한 자가 하나라도 있으면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무식쟁이도 손에 쟁기와 따비를 잡지 않는다. 한갓 문벌만을 빙자하여 공업과 상업에 대해 말하기를 부끄러워한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메뚜기처럼 곡식을 축내는 생활을 하며 꾀가 참 좋다고 우쭐댄다.>" ([안대회의 옛글 읽기]소반을 만들며 http://www.chosun.com/culture/news/200502/2005022502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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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적 구입의 문제를 동아시아적 차원의 교역이라는 큰 틀에서 본다. <<고금도서집성>>이 중국 장서가들 사이에서 많이 소장되었고 일본에도 서너 부 있는 반면, 조선에서는 왕실 소장본 한 부 외에는 전무하다고 지적한 뒤, 서유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는 유독 외국의 상선이 와서 정박하는 것을 불허하니, 구입해 오는 중국번은 다만 공사편(貢使便)에 육로로 운송해온 것이다. 그러나 거각(車脚) 비용이 왕왕 서적 가격보다 비싸서, 전대에 있는 돈을 돌아보면 그 십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니, 어찌 포기하여 물러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문물의 성대함이 해마다 중국에 비견되지만 서적을 수집한 수량은 전대(前代)에 비해 한참 떨어지니, 이는 다만 선박과 수레의 사용을 강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개의 담당자가 통변(通變)하면 될 일에 불과한데 아직까지 나서서 조치를 취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 서적 수집이 도리어 일본에 못 미치는 것이 당연하다.>" (86-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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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남산 기슭에 있는 그(유금)의 집을 방문했는데, 그 편액을 보니 '기하실(幾何室)'이라고 되어 있었다. 나는 들어가서 이렇게 따져 물었다. <그대는 듣지 못했습니까? 기예는 도의 말단이고 수(數)는 기예 중에 또 말단이니, 그대의 학문이 이처럼 작군요>. 그러나 그의 안색을 살펴보니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고, 좌우에 있는 것이 온통 천문과 역수(曆數)의 서적이었는데, 흡족하여 만족스러워하는 것이 그의 성품이 원래 그런 것이었다. 내가 따라서 사과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평판을 위해 자기의 본성을 바꾸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온 세상이 큰 것을 힘쓰는 시대를 당하여 그대 홀로 작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니, 또한 세상에 우뚝하다고 이를 만합니다>." (243-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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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늘 괴이하게 여기는 일이 있다. 요즘 벼슬아치 집안은 도성 밖 십 리 떨어진 지역을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황량하고 비루한 시골인 양 여긴다. 그리하여 아무리 녹봉이 나오는 벼슬이 끊어진 뒤라도 자손 된 사람이 도성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려 들지 않는다."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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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구는 <향촌에 살면서 마땅히 공업을 익혀야 한다는 것을 논함>에서, 중국은 군현뿐 아니라 향리에도 숙련된 공인이 많다고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는 이와 다르다. 경성 내에 목수, 미장이, 쇠붙이를 다루고 석재를 가공하는 공인이 도합 수백 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관아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재력 있는 사람이 아니면 부릴 수 없다. 시골 촌야로 말하면, 비록 100가구가 모여 사는 곳이라 해도 농기구를 잡는 농사꾼 외에는 모두가 놀고 먹을 뿐 곡직, 방면, 형세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지붕이 새어 빗물이 뚝뚝 떨어져도 서까래 하나 갈지 못하고, 소반 다리가 부러져도 10년이 되도록 고치지 않는다.>" (3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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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주는 세상에 기여하는 게 없으면서 사대부로서 기득권을 향유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홍길주의 이런 자기반성적 시각은 더 확장되어, 무위도식을 당연시하는 사대부층 전체를 향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는 서울 사대부 전체를 두고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들이 아침저녁으로 먹는 밥과 죽은 모두 백성의 고혈이다. 부귀한 집에서 누리는 것만 그런 게 아니다. 벼슬 없는 가난한 선비가 기름 팔고 땔감 판 몇 푼의 돈이 모두 어느 현, 어느 리의 백성이 골수에까지 사무치는 극심한 고통을 받으며 인징, 족징을 채우고 그다음 날 죽어서 구렁텅이에 뒹군 데서 나온 게 아니라고 어찌 장담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서울 사람은 아무리 굶어 죽더라도 고종명(考終命)한 셈이다.>" (420-4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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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박제가에게 서울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 나랑 그대가 생장한 곳이라 골목길을 다니는 데 익숙하고 꿈속에도 풍경이 생생한데, 도리어 어찌 차마 하루아침에 이곳을 버리고 떠날 수 있겠나? 어찌 머뭇머뭇 망설이고 돌아보며 가지 못하는 사람이 없을 수 있겠는가? (吾與子生長之地。而步屧慣於阡陌。風景存乎夢寐。則顧何忍一朝棄之而去。寧能無躑躅夷猶眷顧而不行者乎)>" (473쪽)



19세기 초기 조선에서 민간 서점이 약탈된 사건 고서 이야기

19세기 초기 조선에서 민간 서점이 약탈된 사건.

<서점은 19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출현한다. 익종이 대리청정을 하고 있던 시기인 1829~1830년 조정에서 서울의 보은단동에 서점을 열게 하였으나 무뢰한들이 재상가에서 잃어버린 것을 찾는다는 구실을 대어 백주에 억지로 책을 빼앗아 가서 곧 문을 닫고 말았다고 한다(각주 20: 이규경 <서적방사변증설>)

조선시대의 책값은 어느 정도였을까?
강명관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395쪽

五洲衍文長箋散稿 經史篇○經史雜類 典籍雜說 書籍坊肆辨證說 <東俗。從古不貴書籍。故無書籍坊肆。歲己丑庚寅。翼廟代理之際。自廟堂。勸民設施。開肆於都下報恩緞洞。旋卽廢閣。問其故。則有無賴僞稱宰相家。推索見失。白晝勒奪。不可支吾。仍罷之云。>


18세기 후반 조선에서 책장수와 통역관들이 대량 학살 위기에 처한 사건 (명기집략, 청암집) 고서 이야기

18세기 후반 조선에서 책장수와 통역관들이 대량 학살 위기에 처한 사건.

<1771년(영조 47) 청淸의 문인 주린朱璘이 쓴『명기집략明紀輯略』에 태조와 인조를 모독한 문구가 있다 하여 이 책 의 소장자와 판매자를 모두 잡아들여 치죄한 사건에 서쾌에 대한 자료가 다수 나온다. 영조는 이 사건에 대 해 언급하던 중 ‘책 쾌(冊, 곧書)가 도성都城안에 가득하다’ 하였고, 『 명기집략明紀輯略』판매에 관계된 서쾌 8명을 흑산도의 종으로 삼게 하였다. 같은 사건으로 죽임을 당한 서쾌가 1명이 있으니, 전체 서쾌는 모두 9명이다. 그런데 청나라 주린朱璘의 문집인『청암집』을 바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체로 뙤약볕 아래서 거의 죽게 된 역관譯官과 서쾌로서 거의 죽게 된 자가 1백 명에 가깝다고 했는데, 며칠 뒤 역관 50여 명을 잡아들여 곤장을 치고 있으니 이 사람들을 제외하면 서쾌는 아마도 50여 명을 넘었을 것이다. 또 이때 달아난 서쾌가 적지 않았으니 영조 시대에 이미 50여 명을 훌쩍 넘는 서쾌가 서적의 유통에 개입하고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명기집략明紀輯略』사건에서 보듯 서쾌는 서적의 매매를 중개할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수입한 책을 역관을 통해 구입하여 다시 팔고 있었다. 또 조선 후기 수많은 정변政變으로 몰락한 경화세족京華世族가문에서 쏟아져 나온 책들을 거래하기도 하였다. 서쾌를 통해 사족가의 책이 주인을 바꾸게 되었던 것이다.>

지식인의 나라, 조선의 서쾌 (강명관)

<영조 47년 신묘(1771) 6월 2일

임금이 건명문(建明門)에 나갔다. 이때 상역(象譯)과 책 장수로서 《청암집(靑菴集)》을 바치지 않았다는 것으로 벌거벗긴 채 두 손을 뒤로 합쳐 묶어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나란히 엎드려 거의 죽게 된 자가 1백 명 가까운 수효였다.

약방 제조 채제공(蔡濟恭)이 나아가 아뢰기를, “오늘날 성상께서 마음속으로 번뇌(煩惱)하는 것은 단지 주인(朱璘)의 문집(文集) 한 가지 일에 연유해서인데, 여기 한 마디 말로 그것을 깨뜨릴 만한 것이 있습니다. 근래(近來)의 시체(時體)가 새로운 것에 힘을 써서 만약 청(淸)나라 사람의 문집으로 나온 것이 있으면 모두들 한번 보려고 하는데, 어찌 재상(宰相)이 얻어보지 못하는 것을 가난한 선비가 먼저 얻어 볼 수 있겠습니까? 지난번 《봉주강감(鳳洲綱鑑)》에 대하여 승정원에서 펴 보는 즈음에 듣건대 그 인찰(印札) 밖의 양편에 한쪽에는 ‘봉주강감(鳳洲綱鑑)’이라고 쓰였고, 한쪽에는 ‘청암집략(靑菴輯略)’이라고 쓰였다고 하였었는데, 정임(鄭霖)이 공초(供招)한 데서 ‘청암(靑菴)’이라고 말한 것은 틀림없이 이것을 지목하여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윤혁(尹爀)의 공초에서 ‘청암집(靑菴集)’이라고 한 것은 그가 본래 시골의 사내로 무슨 지식(知識)이 있겠습니까? 약(略)이란 글자는 잘라 버리고 ‘집(輯)’ 자(字)를 ‘집(集)’ 자로 잘못 알았음은 분명하여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기필코 없는 책을 이와 같이 찾아내도록 하시니, 단지 전하의 번뇌만 더할 뿐 어떻게 찾을 길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그렇게 여겼다.>


단상 2018 0406 - 무라카미 하루키, 아일레이, 오크니 단상

지난 가을부터 이끌어 온 무라카미 하루키 전(全) 작품 읽기 강연이 오늘로 끝납니다. 오늘은 <<만약 우리의 말이 위스키라면>>(한국어 제목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순례")을 서촌의 모 위스키 바에서 읽으며 테이스팅을 합니다.

인생의 3분의 2를 북유럽과 게르만 신화의 애호가로서 살아온 저는, "아일레이 섬의 이탄(peat, turf)"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스코틀란드 해안이 바이킹의 식민지였던 때를 떠올리고, 그들의 식민 역사를 기념하는 중세 아이슬란드 소설 <<오르크닝아 사가>>의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아일레이 섬은 스코틀란드의 서남쪽 끝, 오크니 제도는 스코틀란드의 동북쪽이지만, 두 지역 주민 모두 이탄을 캐서 피우고 위스키를 마시며 혹독한 겨울을 버텼습니다.

반년 이상 하루키와 함께 한 여행도, 일단 공식적으로는 끝이 납니다. 하지만, 이 여행을 함께 한 몇몇 동지들과는 비공식적으로 모임을 지속해서 <<기사단장 죽이기>>까지 읽을 각오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제가 읽은 하루키 월드에 대해 책을 한 권 쓸 생각입니다.

7. Einarr sigldi vestr til Hjaltlands, ok dreif þar lið til hans; eptir þat fór hann suðr í Orkneyjar ok hèlt þegar til móts við þá Kálf. Þar varð bardagi ok fèllu þeir báðir víkíngarnir. Þá var þetta kveðit: “Hann gaf Trèskegg trollum, Torf-Einarr drap Skurfu.”Eptir þat lagði hann undir sik löndin ok gjörðist hinn mesti höfðíngi. Hann fann fyrstr manna at skera torf ór jörðu til eldiviðar á Torfnesi á Skotlandi, þvíat illt var til viðar í eyjunum. Einarr var mikill maðr ok ljótr, einsýnn ok þó manna skygnstr.

7. Einar sailed west to Shetland, and there folk gathered to him; after that he went south into the Orkneys, and held on at once to meet Kalf and his companion. There a battle arose, and both those Vikings fell. Then this stave was sung: “He gave Treebeard to Trolls. Turf-Einar slew Skurvy.” After that he laid the lands under him, and made himself the greatest chief. He first of men found out how to cut turf out of the earth for firewood on Turfness in Scotland, for they were ill off for wood in the isles. Einar was a tall man and ugly, one-eyed, and yet the sharpest-sighted of men.



[임진왜란과 북동유라시아] 10회 연속강연안 학술활동 및 언론보도

모 도서관에서 10회 강연 제안을 해왔기에 아래와 같은 강연안을 만들어 보냈는데, 자신들의 예상과 다르다는 답신이 있었습니다.


모처럼 만든 강연안인데 흘려보내기 아쉬워서 공개합니다. 혹시 이 내용으로 강연을 희망하는 기관이 있으시면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제1강 임진왜란과 북동유라시아
제2강 <<징비록>>과 <<은봉야사별록>> (조선)
제3강 임진왜란 중과 전후에 일본에서 집필된 문헌들 (일본)
제4강 <<간양록>>, <<난중잡록>>, 그리고 <<해동제국기>>(조선)
제5강 <<난중일기>>와 <<이충무공전서>> (조선)
제6강 임진왜란 이후의 북동유라시아
제7강 <<조선정벌기>>와 <<조선군기대전>> (일본)
제8강 <<성호사설>>, <<해동역사>>, <<청령국지>>와 <<이칭일본전>>, <<조선징비록>>, <<화한삼재도회>> (조선, 일본)
제9강 <<정한위략>> (일본)
제10강 <<임진병란 청정실기>>와 <<문록경장의 역>> (조선,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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