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선언>> 4쇄를 찍게 되었습니다 학술활동 집필 언론 수상.선정

근현대 서울과 한국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지닌 많은 시민들께서 <<서울 선언>>을 읽고, 또 본인들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주신 덕분에, 내일 4쇄를 찍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1쇄씩 찍은 셈입니다.

저의 생각이 비교적 왜곡되지 않고 한국 사회에 받아들여지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기쁩니다.


한편, <<서울 선언 - 문헌학자 김시덕의 서울 걷기>> 전자책도 출간되었습니다.
리디북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고전 한국학 연구에 유용한 일본 학술 사이트 소개 고전 한국학 연구에 유용한 일본 학술 사이트 소개 - 원문 이미지 제공 사이트를 중심으로 문헌학

고전 한국학 연구에 유용한 일본 학술 사이트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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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민족문화 51집, 2018·6]

김시덕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목차]

1. 총론
2. 인터넷에서 일본어 이용하기
3. 서지정보 검색 및 도구 사이트
4. 문헌의 원문 이미지 검색 및 열람이 가능한 주요 사이트
5. 마치며



컬럼 본문은 여기를 클릭

김시덕 <한국학의 동아시아적 지평 - 한국학을 위한 문헌이란 무엇인가? -> 2018. 10. 12 문헌학

다음 주에 모처에서 발표할 내용입니다. 

논문으로 만들 예정이 없으므로, 온라인에 공개합니다. 

별첨 자료는 생략합니다.


발표문 본문은 여기를 클릭

서울선언 2018 1114 - <경인 지역 답사>의 완료 지역과 예정 지역 서울선언

<경인 지역 답사>의 완료 지역(노란색)과 예정 지역(붉은색).


이 지도 바깥에서는 대서울의 서남부(서울->인천 방향), 서북부(마포구, 서대문구, 은평구, 고양시), 서남부(서울->용인 방향) 답사도 조금씩 진행중입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대서울의 동북부(동대문->의정부, 동두천) 답사가 미진한데, 이 지역은 지리적으로 험하기도 하고 멀기도 해서, 어찌해야할지 고민중입니다.

요즘 같아서는 문헌학·전쟁사 연구하는 몸과 대서울 답사하는 몸이 각각 하나씩 있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입니다.

존 키건 <<세계 전쟁사>> 가운데, 미국이 일본에 투하한 원자폭탄에 대한 부분 독서 기록

존 키건 <<세계 전쟁사>> 가운데, 미국이 일본에 투하한 원자폭탄에 대한 부분.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의 사막에 소재한 앨라마고도에서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이 성공적으로 행해졌다는 소식을 듣자, 윈스턴 처칠은 이런 예언을 내뱉었다. "총이 무엇이란 말인가? 하찮을 뿐이다. 전기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 원자폭탄이야말로 하나님의 제2의 분노가 도래한 것이다!" 처칠의 이 말을 들은 사람은 바로 미국 육군장관이었던 헨리 스팀슨이었다. 이 당시 그는 비록 일본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이토록 끔찍한 무기를 사용해야만 하는가 하는 미국정부의 논쟁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주만 공격과 전투에서의 잔혹성 그리고 포로와 식민지 사람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대우 때문에, 미국국민들은 일본에 대해서 일말의 동정심마저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마침내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본본토 공격에는 백만의 미군 사망자가 예상된다는 것은 일종의 속임수로 판명되었다......

일본은 동양에 세워진 유럽 제국을 파괴했고, 과거 유럽 제국의 식민지 지배하에 있었던 민족들은 과거의 주인이었던 유럽 인 통치자와 정착자들이 일본인들로부터 수모를 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1945년 이후 동양에서의 식민지 지배는 어떠한 경우라도 폭력에 의해서만이 재확립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에서 식민지 지배권을 회복하겠다는 노력을 재빨리 포기했는데, 버마에서와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에서도 일본의 영향을 받은 독립운동이 인민주의자의 열정을 사로잡았다. 오로지 프랑스만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이끄는 민족정당의 저항에 직면했는데, 이 정당은 일본으로부터 무기를 공급받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는 전쟁 전의 제국주의 지배를 다시 확립할 생각으로 서둘러서 원정군을 파견했다."

"1945년부터 1985년 무렵까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새로 독립한 국가들이 서양식 군국주의를 받아들인 것은 19세기 유럽의 비무장 인구 사이에서 일어났던 그런 현상만큼이나 눈에 띄는 현상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이 둘은 비슷한 효과를 낳았다(과도한 군비지출, 민간인의 군대식 가치에 대한 복종, 스스로 지도자 자리에 선 군부 엘리트들의 지배 그리고 심지어는 전쟁에 대한 의존 등도 이에 포함된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후 등장한 100여 개의 군대 중 대부분이 객관적인 군사적 가치를 거의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 역시 예상할 수 있었다. 서양의 "기술이전"은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부유한 서양 국가들이 비용을 댈 만한 능력도 거의 없는 가난한 나라들에게 이기적으로 무기를 판매하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무기가 판매된다고 해서 발전된 무기를 치명적으로 사용한 서양인들의 문화까지 더불어 전수되지는 않았다. 미국은 1965년에서 1972년까지 베트남을 상대로 무익한 이념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바로 이 베트남만이 과도기를 거쳐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일본이 1868년의 메이지 유신 이후에 극적으로 이루어낸 바로 그러한 변화이다. 여타 지역은 규율이라는 군대의 미덕을 살리지도 못한 채, 군국주의의 덫에 걸려들었을 뿐이다."(531-534)

존 키건 <<세계 전쟁사>> 가운데 독서 기록

존 키건 <<세계 전쟁사>> 가운데. 현대 한국에서 군대가 차지하는 역할, 그리고 병역을 이수한 힌국 남성들 가운데 일부가 군대와 군생활에 대해 보이는 동경심과 자부심은 참으로 근대적인 산물이자, 흥미로운 연구 대상입니다.

"클라우제비츠는 한 연대 regiment 의 사관이었다...... 그것이 막 탄생할 무렵인 17세기에는, 연대는 단지 새로운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 생활의 혁신적인 요소였다. 그 영향력은 자율적인 관료제도나 공정한 재정관리 만큼이나 중대한 것이었고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연대 - 의미론상 이 단어는 정부 government 라는 개념과 관련이 있다 - 는 국가가 확실하게 군대를 통제하기 위해서 고안한 것이었다......

100년이 지나자 유럽 전역에 이러한 군대주둔 도시들이 생겼고, 이떤 곳은 몇개 연대의 본거지가 되기도 했다...... 이상적인 연대들은 "민족 학교"가 되어 읽기, 쓰기, 셈하기(three R's)를 교육함으로써 절제, 육체적 강인함, 실력을 고취했다. 클라우제비츠의 연대는 바로 그러한 연대의 선구였다. 연대의 지휘관들은 젊은 사관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연대에 학교를 세우고 병사들에게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며 병사의 아내에게는 실잣기와 뜨개질을 가르쳤다.

그러한 "진보적인" 연대들은 그 연대장들에게 깊은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그들 연대가 계몽주의자들에게는 대단히 매력적인 이상인 사회의 완벽함의 전형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비록 병사들은 노예나 다름없었고 달아날 수 없도록 주둔지 도시 속에 감금되어 있는 형편이었지만, 무리를 지어 행진하는 그들의 모습은 멋진 장관을 이루었고 도시 근교의 야만적인 촌락민들과는 구별되는 인종들처럼 보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장기간의 군복무는 군대를 그들의 운명처럼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심지어 전쟁을 수행하기에는 너무나 노쇠한 프로이센의 노병들이 연대를 떠난 이후에도 연대 뒤를 따라다니는 비참한 광경에 대해서 묘사한 글이 있을 정도로, 그들은 군대 이외의 다른 삶을 알지 못했다. 그러한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대령들이, 비록 교련책과 채찍에 의한 것일지라도, 연대가 사회적 미덕을 위한 도구라고 확신하는 것은 당연했다." (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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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경제발전경험모듈화사업: 한국 성인 文解교육의 발전과정과 성과> 교육과학기술부, 한국교육개발원, 2012 
"4. 국군의 문해교육


한국전쟁 및 휴전 후 국가 재건기에 군대는 대한민국의 문해율 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대한민국 징병제의 특성상 청년층 남성은 모두 군입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이들을 대상으로 한 문해교육 실시 효과는 크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 직후 군 내의 비문해자 수는 23만 명에 달하였다. 이에 따라 군은 해방 직후 교육각서를 하달하고 한글교육을 부대장의 책임 하에 실시하도록 하였다. 또한 전국적으로 문해교육을 위한 정책들이 실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군대는 1955년 교육각서 제 24호의 지시를 통하여 보다 체계적으로 군대 내의 문해교육을 실시할 것을 하달하였다. 이에 따르면 군은 장병들의 일반교육을 국민초등교육과 고등공민교육 및 고등학교교육 그리고 대학교육으로 구분하여 실시하도록 지시하였고, 문해교육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군장병 중심의 문해교육을 집중 실시하였으며, 교재는 문교부가 발간한 『한글교본』및 『공민독본』 을 활용하였다. 이에 따라 매년 1만 명 안팎의 장병들이 수료하였다. 이러한 군부대 내의 문해교육은 1960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실시되었는데, 창군 이래 군부대 문해교육을 수료한 장병 수는 60만 명에 육박하였다.

대한민국 군에서는 군대 내에 공민학교를 설치하여 기본과정과 국민과정 등의 초등 수준의 교육을 실시하였다. 기본과정에서는 국민학교 1-4학년의 교육을, 국민 과정에서는 국민학교 5-6학년 수준의 교육을 실시하여 국어, 사회생활, 과학, 셈본, 농사짓기 등의 과목을 가르쳤다. 이에 따라 1954년도 이후 1959년도까지 기본반의 경우 약 14만 명이, 국민반의 경우 약 10만명의 군 장병들이 수료하였다. 국방부는 문교부 및 내무부와의 협력을 통해 군입대 예정자에 대한 비문해 장병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여, 장정들이 군입대 이전에 문해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였다. 1958년도에 문교부, 국방부, 내무부가 공동으로 수립한 “군입대 예정 문맹 장정에 대한 국문교육 실시 요강”을 보면, 1949년도에 제정된 교육법에서 견지하고 있는 의무교육의 정신 위에, 군대 전력 강화 및 현대화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군입대 장병들을 위한 문해교육을 입대 전에 실시할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군입대 예정자 중 국문 미해득자를 대상으로 200시간의 이상의 교육을 문교부 및 내부부의 협조 하에 공민학교를 중심으로 실시하도록 하였다."


서울답사 2018 1111 -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에서 서울선언

주말에 들른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사무소. 

역대 면장의 공덕비 가운데, 식민지 시대 것으로 보이는 2기에서 <다이쇼 大正>로 보이는 연호 표기가 지워져 있었습니다. 

다이쇼 표기는 지우면서도 식민지 시기에 제작된 비석 자체는 세워두었다는 점이, 식민지 시대를 바라보는 현대 한국인들의 상호모순적인 심리를 상징하는 듯 합니다.


단상 2018 1108 - 민주주의가 먼저인가, 민족이 먼저인가 단상

일본의 백정 해방운동이었던 수평사 운동을 기념하는 교토의 기념물. 그리고, 조선의 백정 해방운동이었던 형평사 운동을 기념하는 진주의 기념물.

시민 1,500명의 성금으로 제작된 이 형평사 운동 기념비는 원래 진주성 안에 있었습니다. 성안에 들어가지 못한 백정들의 한을 풀어주자는 시민들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형평사 기념비는 이른바 "진주대첩 기념공원"을 만든다는 이유로 진주성 밖 강가에 옮겨져 버렸습니다.

저는 임진왜란 연구자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형평사 기념비가 이렇게 푸대접받는 것은, 피지배 시민 스스로의 힘으로 조선왕조와 그 지배계급을 무너뜨리는 경험을 하지 못한 한국 사회가 정신적으로 안이하게 조선시대에 회귀하려는 일련의 움직임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가 먼저인가, 민족이 먼저인가. 이 상충하는 두 노선을 무리해서 함께 취하려한 결과, 형평사는 대동사로 그 모습을 바꾸고 끝내 친일단체가 되어 버렸습니다. 현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단체가 민족을 앞세우면 동력을 상실합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가운데, 인도주의 혁명과 독서 혁명 독서 기록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가운데, <<일본인이야기>> 제2권에서 이용할 수 있을만한 주장

"어떤 역사적 변화들이 잔인함을 탐닉하는 행위를 반대하도록 영향을 미쳤을까? 이번에도 우리의 과제는 감수성과 행동의 변화에 선행했던 외생적 변화를 찾는 것이다......

산업혁명 이전에 일찌감치 생산성이 증대했던 기술로는 책 생산 기술이 있다.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한 1452년 이전에는 책을 일일이 손으로 써서 만들었다. 그 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만 아니라 - 250쪽짜리 책에 해당하는 것을 생산하려면 37인일이 소요되었다 - 재료와 에너지 면에서도 비효율적이었다. 필사한 글씨는 인쇄한 글씨보다 읽기 어렵기 대문에, 필사본은 더 커야 했다. 따라서 종이를 더 많이 썼고, 장정과 보관과 운송도 더 비쌌다. 구텐베르크 이후 200년 동안 출판은 초첨단 사업이었다. 인쇄와 제지의 생산성은 20배 넘게 높아졌는데, 산업혁명기 영국 경제의 전체 성장률보다 빠른 속도였다......

책은 귀족과 지식인만의 노리개가 아니었다. 문학 연구자 수잔 킨이 말했듯이, "18세기 말에는 런던과 지방 도시에 순회도서관이 널리 보급되었고, 그들이 빌려 주는 책은 대부분 소설이었다." 책이 더 많아지고 싸지자, 독서의 유인이 커졌다. 의무 교육과 표준 검사가 도입되기 전의 식자율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역사학자들은 대리로 쓸 만한 교묘한 잣대들을 이용한다. 가령 혼인등록증이나 법정진술서에 직접 서명했던 사람의 비율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림 4-10에 클라크가 수집한 두 시계열 데이터가 표시되어 있다. 살펴보면 17세기의 영국의 식자율은 두 배가 되었고, 세기 말에는 영국 남성의 과반수가 읽고 쓸 줄 알았다......

사람들은 더 많이 읽었을 뿐 아니라,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읽었다. 사람들은 종교적 글만 읽기보다는 세속적 글을 읽었고, 집단으로 읽기 보다는 혼자서 읽었고, 책력, 기도서, 성경과 같은 소수의 종교적 텍스트를 반복해서 읽기보다는 소책자나 정기 간행물과 같은 광범위한 시사 매체를 읽었다.

17세기와 18세기에는 사람들이 읽을 내용도 더 많았다. 과학 혁명은 사람들에게 일상의 경험이란 미시적인 차원에서 천문학적인 차원까지 이어진 방대한 연속선 상의 좁은 영역일 뿐임을 가르쳐 주었고, 우리가 사는 행성은 창조의 중심이 아니라 한갓 별을 공전하는 바위일 뿐임을 가르쳐 주었다. 유럽인은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아프리카를 탐험하고 인도와 아시아로 가는 해상 경로를 발견함으로써 신세계를 열어젖혔고, 덕분에 독자들은 자신과는 전혀 다르게 살아가는 이국적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인도주의 혁명의 게시를 거든 외생적 변화로서 쓰기와 읽기 능력의 성장이 제일 유력한 후보라고 생각한다. 마을과 친족으로 이루어진 비좁은 세상은 오감을 통해 접근할 수 있었고, 교회라는 유일한 정보 제공자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사람들, 장소들, 문화들, 사상들로 붐비는 변화무쌍한 만화경이 되었다. 그리고 정신의 확장은 여러 이유에서 대중의 감정과 신념에 좀 더 인간적인 면을 더해주었을 것이다.

연민은 다른 생명체 앞에서 자동적으로 솟구치는 반사적 반응이 아니다. 9장에서 자세히 말하겠지만, 모든 문화는 제 친족, 친구, 아기에 대해서는 공감으로 반응하면서도 그보다 더 넓은 범위의 이웃, 낯선 사람, 외부자, 그 밖의 감각 있는 존재들에 대해서는 그런 반응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다. 철학자 피터 싱어는 <<확장하는 원 - 사회 생물학과 윤리>>에서 인류가 자기 못지 않게 소중하게 여기는 대상의 범위를 역사적으로 점차 넓혀 왔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흥미로운 의문이 떠오른다. 과연 무엇이 감정 이입의 범위를 넓혔을까? 문해 능력의 확장이 좋은 후보이다.

린 헌트는 인도주의 혁명의 절정기였던 18세기 말이 또한 서간체 소설 장르의 절정기였음을 지적한다. 서간체 소설들은 주인공의 입으로 직접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래서 실체가 없는 화자가 멀리서 바라보며 묘사할 때와는 달리, 인물의 생각과 감정이 즉각적으로 노출되었다. 18세기 중반에는 여성 주인공의 이름을 딴 세 멜로드라마 소설이 뜻밖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새뮤얼 리처드슨의 <<파멜라>>(1740)와 <<클라리사>>(1748), 루소의 <<쥘리, 혹은 신 엘로이즈>>(1761)였다. 다 큰 남성 독자들이 자기와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평범한 여성이 (하녀일 때도 있었다) 겪는 금지된 사랑, 견디기 힘든 정략결혼, 잔인한 운명의 반전을 읽으며 눈물을 쏟았다......

출판술의 발전, 책의 대량 생산, 문해 능력의 확산, 소설의 인기는 18세기의 주요한 인도주의적 개혁들에 앞서서 벌어졌다. 베스트셀러 소설과 회고록은 망각된 계층의 피해자들이 겪는 괴로움을 광범위한 독자들에게 알림으로써 정책 변화를 이끌기도 했다...... 가공의 내러티브가 사람들의 감정이입을 부추기고 행동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실험들에 대해서는 9장에서 이야기하겠다.

소설이라는 장르, 특히 서간체 소설이 감정 이입 확산에 결정적이었든 아니든, 독서의 폭발적 성장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만의 편협한 관점에서 벗어나는 습관을 갖게 만듦으로써 인도주의 혁명에 기여했을 것이다. 그리고 독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도 기여했을지 모른다. 도덕적 가치와 사회 질서에 대한 새로운 발상들이 자랄 온상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서울선언 2018 1101 - 수퍼마켓이라는 도시화석 서울선언

모처로부터 요청을 받아서, 제가 지금까지 수집한 수퍼마켓 간판류를 정리해보았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수퍼마켓 간판들로부터 해석할 수 있는 <대서울>의 모습에 대해서는, 내년에 나올 <<서울선언>> 제2편에서 소개할 예정입니다.


시민구판장·시민수퍼체인 2018 0309
대흥수퍼마켙 2018 0528
굴다리마-트 2018 0424
럭키수퍼렛 2018 0424
동산하이퍼마켓 2018 0305
동산하이퍼마켓에서 세븐일레븐으로 바뀌다 2018 0810
충북연쇄점 2018 0228
내마을연세점 2018 0310
고려상회 20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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