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 사료편찬소 발표] 임진왜란을 그린 조선시대 회화자료 북동 유라시아의 전쟁과 문헌

지난 6월 24일에 도쿄대 사료편찬소에서 <임진왜란을 그린 조선시대 회화자료>라는 보고를 했습니다.  딱히 논문이라고 할 정도도 아니기 때문에, 정보 공유 차원에서 이곳에 공개합니다.  발표문은 일본어로 되어 있고, 고유명사는 한글을 병기했습니다.



발표문 본문

고전 한국학 연구에 유용한 일본 학술 사이트 소개 고전 한국학 연구에 유용한 일본 학술 사이트 소개 - 원문 이미지 제공 사이트를 중심으로 문헌학

고전 한국학 연구에 유용한 일본 학술 사이트 소개

- 원문 이미지 제공 사이트를 중심으로 -

[한국고전번역원, 민족문화 51집, 2018·6]

김시덕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


[목차]

1. 총론
2. 인터넷에서 일본어 이용하기
3. 서지정보 검색 및 도구 사이트
4. 문헌의 원문 이미지 검색 및 열람이 가능한 주요 사이트
5. 마치며



컬럼 본문은 여기를 클릭

김시덕 <한국학의 동아시아적 지평 - 한국학을 위한 문헌이란 무엇인가? -> 2018. 10. 12 문헌학

다음 주에 모처에서 발표할 내용입니다. 

논문으로 만들 예정이 없으므로, 온라인에 공개합니다. 

별첨 자료는 생략합니다.


발표문 본문은 여기를 클릭

캐서린 문 <<동맹 속의 섹스>> 서울선언

캐서린 문 선생의 <<동맹 속의 섹스>>를 다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 괴로웠습니다. 남성과 여성, 군인과 민간인, 조국과 외국, 민족주의와 세계주의, 집단과 개인, 계급과 민족 ...... 이 책이 지닌 무거움을 응축한 <맺음말>의 일부를 인용합니다.

"전직 한국인 기지촌 매춘 여성의 경험 중 많은 부분은 전통적인 국가 안보 개념이 부적합하며 많은 여성의 삶과 무관하다는 (버지니아) 울프와 그 밖의 다른 이들의 비판을 뒷받침하는 것이지만, 여성으로서 "전세계가 우리의 조국이다"라는 울프의 주장은 기지촌여성들에게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초국가주의자들(국가 경계를 무시하는 신념가들-옮긴이), 페미니스트들, 그리고 세계 질서 옹호론자들을 비롯해 국제 관계에서 주권을 신성시하는 전통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부유한 서구 국가들에 살면서, 주권을 미신이라 부르고 민족 국가 체계를 "벗어나는 것을 선택할 만큼" 충분히 지적.경제적.사회적으로 권력화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조국 밖을 여행할 수 있고, 사회들을 비교해볼 수 있고, 국제법과 국제 기관에 접근할 수 있고, 경계를 가로지르는 상호 작용들로 주머니 사정을 넉넉하게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스스로를 개인이며 세계 시민으로 정의할 자유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한국 매춘 여성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박탈당한 여성과 남성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자유를 가지고 있지 않다. 여성의 눈에, 그들의 삶의 운명은 민족 국가의 경제적.정치적 강함이나 약함에 달려 있다. 한국 여성의 눈에 한국은 미국이나 다른 강대국들에게 주권 국가로 대우받지 못해 왔다.

따라서 그들이 표현했던 것은 조국과 정부가 동등한 정치적 위치에서 미국 등 다른 권력들과 상호 작용을 주고받아야 한다는 필요성이었다. 여성들은 국가의 주권을 신화이기보다 희망으로 보았고 그들의 삶에 권력을 부여하는 수단으로 보았다. 그들에게 한국이 언젠가 주권을 완전하게 행사하리라는 희망은 그들이 더 이상 학대받지 않으리라는 약속이었다.

내가 인터뷰한 전직 매춘 여성 모두의 논평은 자신들의 민족 국가로부터 보호받기 원하는 깊은 열망과 요구를 보여주고 있다. 공통적인 불만은 국가가 그들을 푸대접한다는 것이었고, 공통적인 희망은 국가가 그들을 민족 가족의 일부로 포함시키고 스스로의 삶에 권력을 부여하도록 권리와 특권을 부여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과 국가의 강함/약함간의 끈을 끊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는데, 이는 한국 사회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리라는 심리적 욕구 때문이자, 한국 경계 밖의 기관과 법이 그들에게는 정부보다 더 도달하기 멀고 어렵게 보이기 때문이었다.

비록 여성들은 세계 정치에서 강한 한국 정부에 대한 욕구를 표현했지만, 그들이 결코 권위주의적 국가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이 바라는 국가의 종류를 분명하게 표현했다. 공정한 법, 그리고 그러한 법으로 여성들의 삶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나라이다.

이 여성들이 자신들의 삶을 규제할 가장 시급하고 믿을 만한 수단으로 공정하고 강한 법 체계를 우선시했다는 것은 중요하다. 캐롤 길리건과 코헨을 비롯해 '페미니스트 입장론'을 옹호하는 이들은 여성의 세계관이 법이나 규칙 지향적이기보다 관계적인 삶의 맥락과 상호작용으로부터 생겨난 상호 관계, 상호 작용, 연관성에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다시말해 관계적 맥락은 여성들에게 지원 체계로 작동해 왔다.

그러나 기지촌 매춘 여성들은 이런 설정에 들어맞지 않는다. 그들의 관계적 맥락 - 가족, 친구, 동료, 이웃, 어머니로서의 그녀 자신 - 은 그들을 지원하고 그들에게 권한을 부여하기보다 그들의 삶을 실패로 이끌었다. 대부분 가족들이 전쟁, 가난, 질병 그리고 신체적 학대로 인해 갈라졌다.

매춘 여성 본인들도 서로를 신뢰하고 의존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는데, 이는 기지촌 생활이란 것이 경쟁, 속임수, 폭력 그리고 두려움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 여성들도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할 기회와 자원을 거의 갖지 못했다. 대부분은 어머니가 되는 것을 기피했고, 많은 이들이 자녀들을 포기하고 미국의 아버지와 입양 기관에 보냈다.

간단히 말해 개인적 관계들과 맥락들이 그들을 좌절시켰기 때문에, 법 규칙들을 더욱 간절히 요구하게 되었다."

228-230쪽


임진왜란 초기 전황과 영천성 수복에 관한 학술회의 학술활동 집필 언론 수상.선정

8월 29일에 <임진왜란 초기 전황과 영천성 수복에 관한 학술회의>에서 토론을 맡게 되었습니다.  영천 복성 전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공부가 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군복무 때의 혹한기 훈련장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영천의 한여름 날씨를 이번에 경험하게 될 터여서 기대반 걱정반입니다 (ㅎㅎ)

*

◾접수 및 등록 : 13:00∼13:20/영천시 교육문화회관
◾기조연설 : 한명기 명지대학교 사학과 교수
사회 : 계승범/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

14:00-14:20
주제#1: 임진전쟁 초기 전황과 영천성 수복에 대한 군사사적 분석 -김경록/국방부군사편찬연구위원
•김진수/육군군사연구소 선임연구원 •원한식/전주대학교 교수

14:20-14:40
주제#2: 영천성 수복대첩 전황과 전개과정 -정재진/담나누미스토리텔링연구원장
•이왕무/경기대학교 교수 •박규홍/대학교육정책연구소 이사장

15:10-15:30
주제#3: 임진왜란 시기 영천읍성 복성전투의 역사적 의의 
-김강식/한국해양대학교 인문한국 교수
•신윤호/해군사관학교 해양연구소 선임연구원 •김한신/고려대학교 박사수료

15:30-15:50
주제#4: 영천성 수복전투를 바라보는 일본의 시각 -김경태/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연구교수
•김시덕/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 •장준호/서강대학교 강사

15:50-16:10
주제#5: 영천성수복대첩 유산에 관한 문화콘텐츠 개발 방향 -이규화/기념사업회집행위원장
•이정섭/한국산업관계연구원 책임연구원 •전석택/과학칼럼니스트

[프레시안 서평] 김정자 증언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 학술활동 집필 언론 수상.선정

프레시안 서평이 실렸습니다. 

저는, 뜻있는 한국 시민이라면 일본군-한국군-미군 위안부 문제를 똑같이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프레시안 서평] 김정자 증언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

관악구 삼성동(옛 신림6동) 계곡 마을의 2018년 3월과 2019년 8월 서울선언

관악구 삼성동(옛 신림6동) 계곡 마을의 2018년 3월과 2019년 8월. 1년 반 사이에 이 동네에도 일이 많았나봅니다. 홍제동 개미마을, 중계동 백사마을과 견줄만한 성격을 지니는 이 마을에 대해서는 꾸준히 관찰할 필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우연하게도 서울대학교에 직장을 잡고 7년 정도 살았으니, 서울대가 1975년에 관악구로 옮겨온 뒤에 이 일대에 미친 영향을 체크하는 것은 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어디에서 살든지 그 지역의 향토지를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일본 유학에서 배웠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인가, 한양역사박물관인가> 학술활동 집필 언론 수상.선정

<<서울신문>> 8월 컬럼이 게재되었습니다.


분량상 편집되기 전에 제가 쓴 글은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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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에 자리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지난 7월 19일부터 <북촌, 열한 집의 오래된 기억> 전시가 열리고 있다. 박물관 로비에서는 7월 30일부터 <유성온천과 대전> 전시가 열리고 있다. 한편 서울역사박물관의 산하 기관인 동대문역사관에서는 6월 11일부터 <도성의 물길> 전시가 열리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도성”은, 흔히 “사대문 안”이라고도 불리는 “한양 도성”을 가리킨다. 이상과 같이 8월 14일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세 개의 전시 가운데 두 개가 조선시대의 수도였던 한양의 영역에 대한 것이다.이번에 북촌에 대한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필자는 “또 사대문 안인가”라고 생각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이라면 서울시 전체를 아우르는 박물관이어야 하지만, 이제까지 이 기관은 사대문 안과 넓은 의미의 한양을 가리키는 도성 바깥 10리 “성저십리(城底十里)” 지역에 대한 전시를 주로 해왔기 때문이다.조선시대 한양은 한강 북쪽 “강북”에 자리했고,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한강 남쪽 여의도만 간신히 성저십리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반해 근대 시기인 1936년에는 영등포 일대가 경성에 편입되면서 서울이 오늘날과 같이 한강을 끼고 남북으로 펼쳐진 형태를 이루게 되었고, 현대 시기인 1963년에는 오늘날의 강남3구를 비롯한 그 바깥 지역이 모두 서울에 편입되었다. 조선시대 한양의 인구는 20여 만명으로 추정되는 반면, 현재 서울시의 인구는 천 만 명에 달한다.이렇듯 오늘날의 서울은 조선시대 한양과는 매우 다른 도시이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지명을 붙이고 있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진행해 온 전시와 도서 출판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우선, 서울역사박물관 및 그 산하기관인 경희궁•경교장•백인제가옥•한양도성박물관•동대문역사관•청계천박물관•돈의문전시관•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모두 사대문 안팎에 자리하고 있다. 근현대 서울의 삼대 도심권인 강북도심•영등포•강남 가운데 강북도심에만 “서울”역사박물관이 몰려 있는 것이다.이런 지리적 조건 때문인지, 아니면 현대 서울의 근원은 오로지 조선시대 한양에만 있다는 “조선주의” 때문인지, 전시와 도서 발간도 한양 도성 안팎이 주된 대상이 되고 있다. 2015~19년에 서울역사박물관이 개최한 전시 가운데 한양도성•성저십리 안쪽을 대상으로 한 것은 34개, 성저십리 바깥을 대상으로 한 것은 한강•잠실•북서울•가리봉오거리의 4개다. 발간 도서 역시 34권 대 11권으로 그 차이가 뚜렷하다. 지난 5년간의 서울역사박물관 전시•발간도서 목록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정리해 두었으니, 이 수치가 의심스러우신 분은 직접 확인하시면 되겠다.이리하여 필자는 의문을 품게 된다. 지금의 서울역사박물관은 한양역사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꾸는 게 맞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메갈로폴리스 서울은 조선시대 한양과는 질적으로 다른 도시다. 오늘날 서울 시민의 대부분은 조선시대 한양 도성 바깥에 살고 있다. 서울시의 공식 박물관은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여 연구•전시 범위를 적극적으로 넓혀야 할 것이다.

*

서울역사박물관의 전시 및 도서 발간 현황 (2015~2019)


전시

[성저십리 안쪽 : 34개]
1 천변호텔, 3.1아파트
2 2019년 한양도성박물관 상반기 기획전 '성문개폐'
3 남소문동천
4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5 숭례문, 다시 세우다
6 메이드 인 청계천 대중문화
7 훈련원과 하도감
8 천변풍경
9 기록자료로 본 한양도성 2 도성을 다시 쌓은 사람들
10 1904 입체사진으로 본 서울풍경
11 백운동천
12 운현궁, 하늘과의 거리 한자 다섯치
13 흥인지문, 왕을 배웅하다
14 준천, 영조와 백성을 잇다
15 구와바라 시세이 사진전, 다시 보는 청계천 1965-1968
16 기록자료로 본 한양도성1 1970년대의 보수와 복원
17 남대문시장
18 삼청동천
19 1784 유만주의 한양
20 2016년 한양도성박물관 하반기 특별전 '푸른 눈에 비친 한양도성'
21 광통교 서화사
22 인현동 인쇄골목
23 제정구의 청계천 1972-1976
24 광통교 서화사
25 2016년 한양도성박물관 상반기 사진전 '사진 속 근대 한양도성 풍경'
26 서울-북경 국제교류전 '물길 도시, 서울:청계천의 변화'
27 청계천박물관 기획전 '청계천 복개시대'
28 경희궁
29 2015년 한양도성박물관 하반기 특별전 '도성일관'
30 홍순태 아카이브 '청계천 6070'
31 광복 70주년 특별기획전 '남산의 힘'
32 2015년 한양도성박물관 기획전 '창의문과 사람들'
33 탑골에서 부는 바람
34 청년문화의 개척지, 신촌

[성저십리 바깥 : 4개]
1 경강-광나루에서 양화진까지
2 88올림픽과 서울
3 아파트 숲이 된 북서울
4 가리봉오거리

[일반 : 13개]
1 안데르센, 코펜하겐 1819
2 서울과 평양의 3.1운동
3 서울-예테보리 국제교류전
4 바티칸 국제전
5 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
6 서울 엘레지: 프랑소와즈 위기에 사진전
7 서울-오덴세 국제교류전 '안데르센 이야기'
8 '22번의 교정' 건축가 박학재 기증유물특별전
9 홍순태 서울사진아카이브 '세 개의 방'
10 우당 6형제의 독립운동
11 한영수 기증유물특별전 '내가 자란 서울'
12 정인국 기증유물특별전 '건축40년 시대를 담다'
13 불도저 시장 김현옥

발간도서(정기간행물 및 영어 버전은 제외)

[성저십리 안쪽 : 34개]
1 도성의 수문
2 북촌 11가의 오래된 기억
3 북촌 -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터전
4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상설도록
5 서울 한양도성
6 대중문화 '빽판의 시대'(청계천박물관)
7 준천 영조와 백성을 잇다
8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9 천변풍경
10 장충단에서 이간수문으로 흐르는 물길, 남소문동천
11 훈련원과 하도감
12 1904 입체사진으로 본 서울풍경
13 백운동천
14 운현궁, 하늘과의 거리 한자 다섯치
15 청파.서계
16 청년문화의 개척지, 신촌
17 홍대앞 클럽데이 아카이브
18 홍대앞
19 신촌
20 남대문시장
21 1784 유만주의 한양
22 백인제 가옥
23 도성발굴의 기록3 - 서울 한양도성 중앙광장 및 회현자락 부지내 유적 종합보고서
24 인현동
25 광통교 서화사
26 경희궁은 살아있다 전시도록
27 인현동
28 후암동
29 도성일관
30 탑골에서 부는 바람
31 남산의 힘
32 잘가, 동대문운동장
33 황학동
34 남산에서 찾은 한양도성

[성저십리 바깥 : 11]
1 반포본동
2 경강, 광나루에서 양화진까지
3 88올림픽과 서울
4 대치동
5 서울기획연구1 경강 광나루에서 양화진까지
6 아파트 숲이 된 북서울
7 서울시정사진총서7 1974-1978(1) 가자! 강남으로
8 신림동 청춘
9 가리봉 오거리
10 신림동
11 성수동

[일반 : 38]
1 서울지역 유적 발굴조서총서 4
2 서울과 평양의 3.1운동
3 기증유물 목록 18
4 서울기획연구4 서울은 소설의 주인공이다
5 대경성부대관과 대경성도 - 시대관으로 보는 경성 상점가
6 소장유물자료집 9 동적전식례
7 서울시정사진총서9 1979-1983 선진 수도로의 도약
8 2018 서울역사박물관 리뷰
9 서울지역 유적발굴조사총서3
10 기증유물목록17
11 소장유물자료집8 각정동 직업별호구조서
12 소장유물자료집7 구보 결혼
13 서울기획연구2 88서울올림픽 서울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14 서울시정사진총서8 1974-1978(2)착실한 전진
15 1920-1930년대 그림으로 보는 경성과 부산
16 2017 서울역사박물관 리뷰
17 서울지역 유적 발굴조사 총서2
18 2017 한중일 국제심포지엄 도시역사박물관과 도시의 기억
19 우당 6형제의 독립운동
20 바티칸 국제전
21 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
22 기증유물목록16
23 서울지역 유적 발굴조사 총서1
24 기증유물목록15
25 콘 와지로 필드 노트
26 2016 서울역사박물관 리뷰
27 정인국 기증유물특별전 '건축40년 시대를 담다'
28 기증유물목록14
29 코넬대학교 도서관 소장 윌러드 스트레이트의 서울사진
30 2015년 서울역사박물관 리뷰 - 역사가옥박물관
31 서울시정사진기록총서6 - 두더지시장 양택식2
32 건설시대의 서울
33 22번의 교정 - 박학재 기증유물특별전
34 서울시정사진기록총서5 - 두더지시장 양택식1
35 대경성부대관
36 1908 한성부지적도
37 학술총서 10 성베네딕도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소장 서울사진
38 도성과 마을1

엔리코 모레티 <<직업의 지리학>> 서울선언

토요일에는 엔리코 모레티 <<직업의 지리학>>을 읽었습니다. 이미 이 책을 읽은 분들의 의견대로, 인사이트를 많이 주는 책이었습니다. 특히 아래의 구절을 읽다가, 인천 우각로문화마을의 활동과 해산 이후의 궤적이 떠올랐고, 현재 한국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도시재생사업의 미래를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첨부한 사진은 2018년 여름에 찍은 우각로문화마을의 경관입니다.

"장소에 기초한 정책들을 제대로 엄격하게 살펴보려면 우리는 어떡해야 할까? 그 정책들로 인해 지원 기간 동안 일자리가 생겼느냐의 여부가 진짜 테스트는 아니다. 자금 유입 때문에 일시적으로 한 지역의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는 게 그 자금이 잘 쓰인 징표는 아니다. 대신 우리는 공적으로 조달된 그 종잣돈이, 결국 혼자 자립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많이 그 단지를 긴밀하게 지원하여 급기야 이뤄냈느냐의 여부를 주목해야 한다. 요는, 정부가 투자를 해 지역 경제를 티핑 포인트 넘어서까지 끌고 가되, 더 이상은 끌고 가지는 말아야 하는 것이다." (299쪽)

<<인천인>> 2016년 2월 24일 <남구 '우각로문화마을' 해산 - 예술인들 무상입주 공간 재계약 어려워>

<<인천인>> 2016년 11월 30일 <뉴스테이는 대안이 될 수 있나?>

<<시민과 대안 연구소>> 2017년 9월 5일 <협동으로 구도심의 희망을_토리협동조합 편>

"우각로에 들어온지 벌써 꽤 되었다. 가끔가다 지역주민들의 위축된 모습을 본다. 그때마다 우각로 문화마을을 바라보는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들의 위축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고민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시선들과 생각이 다르다. 우각로는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이고, 분명 재생할 수 있는 곳이다. 재개발이나 도시재생 같은 거창한 키워드와 별개로 주민들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한다."


*

"정책 당국자들과 업계 지도자들은 중소기업이 일자리 창출의 대부분을 떠맡고 있다고 변함없이 들먹이며 중소기업의 미덕을 쉽게 칭송하곤 한다. 그 지적이 맞기는 하지만, 중소기업의 대부분은 소매 그리고 기타 비교역적 서비스를 영위한다. 결국 그들의 존재는 대기업이 지배하는 교역적 부문의 활력에 의존한다." (100쪽)

: 결국 중소기업 예찬론은 경제적 논리이기보다는 <표>를 의식한 정치적 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 두 논리 사이의 격차를 어떻게 해석하고 정치의제로 만드는가 하는 점이 21세기 중기의 세계에서 중요한 과제이겠습니다.

*


"지역에서 장인들이 만든 제품에 대해 소비자들이 느끼는 매력이 뚜렷하게 부활하고 있다. 요즘에는 식품에서 의류, 자전거에서 가구에 이르기까지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이라면 죄다 유행한다. 뉴욕에서 프로비던스, 포틀랜드, 미니애폴리스에 이르기까지, 장인들의 작업장이 점점 더 많이 생겨났으며 이 작업장들은 최신 유행 상품을 취급하는 양품점을 통해 상품을 팔고 있다. (중략)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미국의 일자리 부족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첫째, 고급 수제 제품들은 틈새 현상으로 남게끔 운명지어져 있다. 한마디로 만들어지는 일자리 수가 너무 적어 대세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좀 더 근본적으로 이 일자리들은 공동체에 일자리 성장의 동인으로 작용될 수 없다. 이 일자리들은 어쨌거나 다른 어떤 부문에서 창출되는 부의 결과물에 불과하다. (중략)

또한, 지역 제조업의 매력 가운데 중요한 부분 하나는 우리가 그것을 뭔가 특별하고 다른 무엇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소비자들이 '독특하다'고 알아주는 것의 좁은 한계를 넘어 이 부문이 규모를 키우기가 본질적으로 어려운 것이다." (56-60쪽)

: 최근 한국에서 확인되는 유사한 움직임을 이해하는데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서울대 명예교수 김광현·건축학 <건축은 인문학이 아니다> 2019년 7월 24일자 한국경제 서울선언

저는 김광현 선생 쪽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인문학과 공학은 서로 다른 것이지요.


건축가 승효상 <건축은 인문학이다> 2002년 1월 30일자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1049546


서울대 명예교수 김광현·건축학 <건축은 인문학이 아니다> 2019년 7월 24일자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opinion/article/2019072477971


"인문(人文)이란 인간(人)의 무늬(紋)이고 그 무늬를 만드는 것이 건축이니, ‘건축은 인문학이다’는 주장이 서서히 속설이 됐다. 그런데 이 주장의 배경은 아주 단순하다. 건축은 삶을 영위하는 방식이고, 삶을 조직하는 일이므로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명쾌하게 얘기하면 대중의 관심을 끄는 법. 하지만 그 결과는 심심치 않게 나타나는 오류의 바탕이 됐다. 이렇게 간단하게 건축이 인문학이라고 단정될 정도라면 건축과 건축학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건축은 당연히 공학에 바탕을 두며 사람의 삶을 중시한다.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런데도 이들은 공학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사람의 삶을 중시한다면서 ‘인문학적 접근’이라는 말을 쓴다. 유독 우리나라에만 있는 ‘인문학적 건축’에 대한 사랑으로 건축 전문가가 스스로 건축의 공학적 바탕을 외면하는 일이 벌어진다. 무본억말(務本抑末)이란 말이 있다. 학문이 도덕철학을 앞세운 인문학에만 치중하고, 사(士)는 본(本)이고 실용적인 공(工)은 말(末)이라 여긴 조선시대의 가치관이다. 공학을 경시하는 오늘의 ‘인문학적 건축’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건축의 깊이는 이렇게 얕지 않다. 건축은 4000년 전에도 있었다. 요즘 남용되는 ‘인문학’에 얹혀 제일 득을 보고 있는 분야는 다름 아닌 건축이다. 지금 건축가가 별생각 없이 “건축은 인문학이다”라고 하는 것은 자기 건축을 조금 색다르게 보이게 하기 위한 화술이나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인문학에 대한 모독이고 건축의 본령을 스스로 경시하는 것이다."


"인문학적 건축이라는 유행어의 속내는 건축을 인문학으로 포장해서 그 본질마저 흐리며 “인문학이 건축을 바꾼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데 있다. 인문학적 건축이라고 그렇게 주장하면서 과연 무엇을 발견하고 실제로 축적했는가? 아무것도 없다. 대중에게 재미있는 말로 건축을 허학(虛學)으로 만들어놓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묻는다. 그러면 우리는 왜 물질과 공학에 바탕을 둔 “건축이 인문학을 바꾼다”는 생각은 못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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