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저에게 연락을 주실 때에는 단상

오랜만에 학교 이메일을 열어보았는데, 역시나 익명의 인신공격성 이메일이 다수 도착해 있었습니다.

저의 소속 기관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는 이메일 어드레스는 정신 건강을 위해 앞으로도 열어보지 않으려 합니다.

저에게 연락하실 일이 있는 분들께서는 저의 개인 휴대폰 문자메시지, 또는 개인 이메일을 통해 연락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전화 통화는 하지 않습니다.

졸저 <<일본인 이야기>> 제2권이 출간되었습니다 학술활동 집필 언론 수상.선정

졸저 <<일본인 이야기>> 제2권이 출간되었습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

[목차]

서장 백성과 의사

1장 백성들의 이야기

1 다시 닫힌 세계, 죽어가는 백성들
2 떠도는 사람들
3 낙태, 영아 살해, 아이 버리기

2장 의사들의 이야기

1 가난한 백성들을 치료한 의사들
2 선진 의학과 천연두


[도쿄대 사료편찬소 발표] 임진왜란을 그린 조선시대 회화자료 북동 유라시아의 전쟁과 문헌

지난 6월 24일에 도쿄대 사료편찬소에서 <임진왜란을 그린 조선시대 회화자료>라는 보고를 했습니다.  딱히 논문이라고 할 정도도 아니기 때문에, 정보 공유 차원에서 이곳에 공개합니다.  발표문은 일본어로 되어 있고, 고유명사는 한글을 병기했습니다.



발표문 본문

서로즈 서르버하라 <기계> 중.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 독서 기록

서로즈 서르버하라 <기계> 중.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 127-128쪽

"친구야,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
여기는 재스민과 천일홍들이 애정을 뿌리며 웃지 않는다
새들도 평화의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여기는 사람들이
기계의 거친 소음과 함께 깨어난다

...

사람이 만든 기계와
기계가 만든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다가
저녁에는 자신이 살아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구나
친구야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54쪽

"신애는 난장이가 일을 하는 동안 그의 부대 속에서 나온 기계와 무쇠 조각들을 만져보았다. 그것은 절단기•멍키스패너•렌치•드라이버•해머•수도꼭지•펌프종지굽•크고작은나사•T자관•U자관, 그리고 줄톱들이었다. 쇠로 된 것들뿐이었다. 모두 난장이를 닮아보였다."

예술과 학문은 핏줄이 아닌, 그 처한 상황의 일맥상통함에 의해 계승됩니다. 네팔인 이주노동자 서로즈 서르버하라 선생이 조세희 선생의 작품 세계를 계승했군요.


한국의 고즈넉한 여인숙들 한국

동두천 중앙여인숙, 안동 낙동여인숙, 김포 송미여인숙, 수원 금보여인숙.

한국의 고즈넉한 여인숙들. 이런 건물들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차명수, 기아와 기적의 기원 독서 기록

"식민지 지배 아래서 근대적 경제 성장이 일어났다고 하면 사람들은 식민지 지배 "때문에" 근대적 경제 성장이 일어났다는 말로 알아듣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불필요한 논쟁이 시작된다. 식민지 시대에 근대적 경제 성장이 일어났다는 말과 식민지 지배 때문에 근대적 경제 성장이 일어났다는 말은 다른 말이다. ... 1910년 일본 제국으로의 공식적 편입은 이미 시작된 인구 변천과 산업 혁명을 가속했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 총독부는 경제 성장에 필요한 공공재를 공급할 수 있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강력한 정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금을 거둬 거기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할 수 있었던 최초의 효과적인 권력이었기 때문이다." (차명수, 기아와 기적의 기원, 187쪽)

"많은 사람들은 박정희가 실시한 산업 정책이 고도 성장을 가져왔다고 믿고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고도 성장기에 떠오른 산업들이 자라나는 배경에는 정부 지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산업 정책이 실시되던 시기에 일인당 생산이 전무후무하게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두 사실 어느 것도 산업 정책 -> 고도 성장이라는 인과관계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 ... 박정희의 산업 정책이 고도 성장을 가져왔다고 사람들이 믿는 이유는 정부 지원을 받은 산업이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다는 것 외에도 산업 정책이 실시되던 시기에 생활 수준이 전무후무하게 빠른 속도로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식민지 시대에 근대적 경제 성장이 일어났으므로 식민지 지배 때문에 근대적 경제 성장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추론이다. ... 결론적으로 박정희의 산업 정책이 고도 성장을 가져왔다는 주장이나 믿음에는 근거가 거의 없다. 산업 정책이 제조업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증거는 없는 것과 다름없다. 설사 도움을 주었다고 하더라도 자원 배분의 효율성 악화라는 부정적 효과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큰 것이 아니었음을 다중 회계 분석 결과는 알려준다.

고도성장기의 산업 정책을 평가할 때 흔히 빠뜨리고 넘어가는 세 가지 이슈가 있다. 하나는 박정희의 산업 정책은 순수히 경제 정책으로서가 아니라 안보 정책으로서도 집행된 것이라는 점이다. 미군이 철수하자 베트남이 공산화된 것을 본 박정희는 독자적 국방 능력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서 중화학 공업 육성에 나서게 되었다고 한다. 만일 중화학 공업화 정책이 한국의 공산화 위협을 감소시켰다면 이것이 중화학 공업화 정책의 공과를 평가할 때 반영되어야 한다. 둘째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정부의 시장 개입이 지속적으로 완화되어 갔다는 사실이다. ... 바꾸어 말하면 한국 고도 성장은 정부의 강력한 시장 개입 아래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정부의 개입이 지속적으로 약화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중화학 공업화 정책 아래서 재벌이 등장하고 산업 구조의 경쟁적 성격이 약회되었는데, 이는 중화학 공업화 정책이 중단된 이후에도 한국 경제의 퍼포먼스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는 제도적 환경으로 자리잡았다." (214-222쪽)

최근의 연구실 중앙 테이블 상황 고서 이야기

Documents of Korea and Japan in premodern and modern period have met at my office.


<<일본인 이야기>> 제2권의 서평단을 모집한다고 합니다 학술활동 집필 언론 수상.선정

  다음 주에 <<일본인 이야기>> 제2권이 출간됩니다.
  출판사에서 서평단을 모집한다고 하여, 이 공간에서도 소개를 드립니다^^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고포리 어섬과 마산포 사이의 개미다리와 송덕비 대서울 단상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고포리 어섬(엇섬, 어도)과 마산포 사이의 개미다리와, 공사 완성을 기념하는 송덕비. 여러 자료에 따르면 2010년대 전반기까지는 고포교회 밑에 이 비석이 있었다고 하는데, 오늘 제가 답사했을 때는 찾지 못했습니다.

혹시 이 비석의 행방을 알고 계신 분, 또는 알고 계실만한 분을 아시는 분은 저에게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쓸 책에서 이 비석을 언급할 때 존함을 밝혀 감사의 뜻을 표하겠습니다.



시흥 호조벌 간척지, 화성 어섬 개미다리 대서울 단상

1721년에 건설된 시흥의 호조벌 간척지와 흥부배수갑문. 이 지역이 간척된지 올해로 딱 3백년 됐네요. 한반도의 역사적인 토목 건설 유적입니다.

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5757497&cid=63856&categoryId=63935



화성시 송산면의 낙도였던 어섬과 마산포 포구를 이어주던 개미다리. 1971-74년의 4년에 걸쳐 주민들이 바다를 뚫고 이 다리를 놓았습니다.

이제는 시화호 간척 사업으로 인해 바다가 육지가 되어 이 다리의 의미가 없어졌고, 다리 완공을 기리는 개미다리 송덕비도 찾을 수 없었지만, 근현대 한국에서 시민들이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이루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개미다리는 앞으로도 기억될 필요가 있습니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