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문화상(학술부문)을 수상했습니다 활동

서울특별시 문화상(학술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저의 작업을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으니,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서울과 한국과 동아시아를 기록하는 작업을 계속하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공지] 저에게 연락을 주실 때에는 단상

저에게 연락하실 일이 있는 분들께서는 저의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메신저, 개인 휴대폰 문자메시지, 개인 이메일을 통해 연락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hermod.kimshiduck/

정동일 책임조사•집필 <<고양군 지명유래집>> (1991) 단상

정동일 책임조사•집필 <<고양군 지명유래집>> (1991).

일산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고향의 경관이 사라진다는 위기감을 느낀 정동일 선생이, 그 순간에도 파괴되고 있던 고양군의 지리와 지명을 기록한 기념비적인 저서입니다.

"한국사를 공부하면서도 지배층 중심의 역사를 습득하던 강의실 학습에서 실제로 근•현대사를 기술하는데서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조사의 시기가 늦은 감이 있어 많욘 지역이 도시화됨에 따라 채보의 내용이 충실치 못하였습니다.  끝으로 그동안 많은 도움을 주신 각 마을 어르신네들께 감사드립니다. 조사자 일동"

저는 농촌이나 단독주택단지보다는 주공•시영 등의 아파트단지가 익숙하고, 일산 신도시에도 살아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왜 신도시 개발 전의 상황에 관심을 갖고, 신도시 개발로 인해 떠나간 사람들에 관심을 가질까"
라는 질문을 최근 던졌습니다.

안양 평촌 신도시가 건설되기 전에 "농촌 평촌"에 살면서 만난 사람들, 특히 할아버지와 둘이 비닐하우스에서 살던 저의 친구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

그리고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는 저 같은 도시 사람들이 모두 지녀야 할 부채의식•죄의식이 저의 활동을 이끌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평촌 신도시에 대한 저의 기억은 <<서울선언>>에 적어두었습니다만,

신도시로 사라지게 될 서울 교외지역에서의 짧지만 강렬한 경험이 저로 하여금, 그곳에 있다가 떠나간 "제자리 실향민"들을 추적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내일 오후에는 고양 일산 신도시의 후곡문고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후곡이라는 지명도 "농촌 일산" 시절의 마을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강연에 맞춰서 귀중한 자료가 도착해서 다행입니다.


"1987년 군에 입대한 그는 휴가를 나올 때마다 원당이 급변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고, 어떻게든 고양군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초조함과 절박함을 느꼈다. 허허벌판이었던 원당에 호화로운 원당예식장이 들어섰고, 리스쇼핑센터가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고양시 최초의 택지개발사업인 원능택지개발사업이 시작돼 주공아파트가 들어오고 있었다. 

휴가병이었던 그는 고양군청에 들어가 “이렇게 변화되고 있는데 누군가 기록하고 있느냐?”고 물어봤다. 하지만 그런 일 하는 부서는 없다는 대답뿐이었고, 답답한 마음에 전공 교수를 만나 이 이야기를 하자 “고양은 네가 책임져라!”는 말을 들었다. 

제대 두 달을 앞둔 89년 4월 30일, 일산에 신도시를 만들겠다는 발표를 들었다. 마지막 휴가를 나왔을 때, 사라지는 마을 역사에 대한 조사는 토지공사가 하는 것이지만 주민들 반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 그 자신이 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결심이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다."


평택의 "난민정착농장들" 단상

어제 답사를 다녀온 평택항·포승공단의 옛 지도를 검색하다가, 평택과 화성 사이의 간척지에서 "난민정착농장들"이라는 지명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자료에는 "연백난민정착농장들"로 등록되어 있네요.  인천 영종도와 마찬가지로, 아마 여기에도 육이오 전쟁 때의 황해도 피난민들이 정착했나봅니다.

원래 찾으려던 지역은 다른 곳인데, 이 지명을 접하고는 또 생각에 잠깁니다.......

토목, 도시, 건축 분야에 관계한 분들은 옛 항공사진을 많이 이용하시지만, 저는 항공사진보다는 당시의 지명들이 적혀있는 구지도가 더 좋습니다.  지명이 적혀있어야 "난민정착농장들"처럼 사연 얽힌 지역들을 확인할 수 있거든요.


트레바리 클럽 <시민의 도시 대서울을 걷다>에서 읽을 책의 리스트 단상

1년만에 다시 시작하는 트레바리 클럽 <시민의 도시 대서울을 걷다>에서 멤버분들과 읽을 책의 리스트를 소개합니다.  다음 시즌에는 도시계획 쪽의 책으로 리스트를 바꾸어볼까 생각중입니다.

[첫 참가 멤버]

2021/12 : <서울스토리>
2022/1 : 에드워드 글레이저 <도시의 승리>
2022/2 : 리처드 플로리다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
2022/3 : 김시덕 <서울선언> <갈등도시> <대서울의 길> 가운데 한 권

[2회 이상 참가 멤버]

2021/12 : 김학렬 <서울 부동산의 미래>
2022/1 : 마스다 히로야 <지방 소멸>
2022/2 : 마강래 <지방도시 살생부>
2022/3 : 김시덕 <대서울의 길>


고양 일산 밤가시초가 단상

새마을운동 당시의 지붕개량운동, 그리고 1기 신도시 개발 때의 택지개발사업을 이겨낸 고양 일산 밤가시초가.

일산 신도시에 대한 조사를 하면서, 이 집을 지켜낸 당사자인 이경상 선생의 이름이 좀 더 널리 알려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밤가시초가에 대한 자료를 찾다보면, 집을 지켜낸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의 이름이 더 자주 언급되고 있어서 의아함을 느꼈기에 이런 코멘트를 남깁니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많은 초가가 헐릴 때 18세의 이경상 할아버지가 낫과 호미로 막아 이집을 지키고,

1989년 일산 신도시 개발이 한창일 때도 이경상 할아버지가 나무 위, 지붕 위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며 지켜낸 집이다.>

1989년 6월 3일자 조선일보 <어느 영농후계자> 단상

1989년 6월 3일자 조선일보 <어느 영농후계자>.

성남시 분당에서 화훼농사를 짓다가, 분당 신도시 개발 때문에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된 27세 함 모 청년의 사연입니다.

내일의 삼프로TV <김시덕 박사의 도시야사> 녹화를 준비하면서 자료를 보다가, 이 기사를 접하고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런 사람에 대해 "가짜 원주민", "토지 보상을 바라고 버티는 알박기"라고 말하는 사람을 도시에서 많이 만납니다.

"이곳만큼 화훼단지로 적합한 땅이 없는데 이제 어디로 가서 꽃농사를 지으란 말이냐. ... 옮겨갈 토지를 물색하러 일도 팽개친채 오토바이를 타고 하루 3백~4백km씩 경기도 일대를 쏘다니지만 실망뿐이다. ... 정부고위층이 틈만 나면 농민보호를 강조하지만 이런 경우 누가 농사를 지으려 하겠느냐. ... 나처럼 젊은 농어민 후계자들에게 도움은 못줄망정 의지를 꺾는 일을 해서야 되겠느냐. ... 정부의 신도시 개발계획은 재고되어야 한다."


20일 토요일에 노들섬 노들서가에서 뵙겠습니다^^ 활동

20일 토요일에 노들섬 노들서가에서 말씀드릴 자리가 생겼습니다.

서울시 문화본부
https://www.facebook.com/culture.seoul.go.kr/posts/253999796771378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이 날 자리가 끝난 뒤, 용산이나 노량진 답사를 함께 하시지요.



<김시덕 박사의 도시야사>, 서울 강남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활동

아직 온라인에 공개는 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삼프로TV•일프로TV에서 방송중인 <김시덕 박사의 도시야사>는 오늘로 서울 강남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강남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답하기 위해, 몇 주에 걸쳐 강서구 화곡동에서 강동구 강일동에 이르는 한강 남쪽 지역의 개발 과정을 살폈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확장강남"의 과거와 미래를 확인하기 위해 성남시부터 천안•아산시까지, 신도시 개발사를 중심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사진은 2018년 4월에 서울시 강동구 강일동과 경기도 하남시 선동의 경계에서 찍은 것입니다.

하남 쪽에 먼저 신도시가 들어섰고, 이 하남•미사지구와 강동구 고덕동의 양방향에서 개발 압력을 받은 상일동•강일동 지역에서는 화훼단지들이 막 철거된 상태였습니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보기 위해 잠실에서 경기도 빨간 버스를 한참 타고 동북쪽을 향했더랍니다.


1957년 8월 20일자 조선일보 <판자집 대책은 없는가?> 단상

피난민 수용소를 다룬 이번 주말판 한국일보 연재글을 쓰고 나서, 새벽에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이 컬럼을 보고는 또 다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월남민, 판자집, 빈민촌, 그리고 이 지역을 이용한 이촌향도민의 도시 유입.  현대 한국을 만들어낸 이 거대한 흐름을 파악하고 싶습니다.

"판자집 거주자들은 거의 다 전재민 또는 월남 동포로 그날 그날의 생활도 용이치 않은 터인데 판자집마저 없어진다면 생활이 더 말 아닐 것이므로 강제철거도 할 수 없는 것이고" (1957년 8월 20일자 조선일보 <판자집 대책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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